헌책·LP판 늘어선 '부키니스트'…100년 전, 헤밍웨이·릴케가 걷던 곳

입력 2014-09-01 07:02   수정 2014-09-02 13:04

프랑스 파리 문학 기행


[ 나보영 기자 ]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로 여행을 온 소설가가 늦은 밤에 거리를 산책하다 우연히 20세기 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내용을 담았다. 시간여행을 떠난 주인공은 평소 동경해 마지않던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해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 전설이 된 예술가들과 파리에서 매일 밤 교류하며 환상적인 시간을 갖는다. 당시 파리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도시였다. 세계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리는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자 모여든 이들로 늘 북적였고, 그들의 예술혼은 불멸의 작품으로 영원히 남았다.


작가들이 사랑했던 파리의 숨은 매력

파리에는 몇백 년 전 도로와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당시 작가들이 드나들던 서점과 카페도 고스란히 찾아볼 수 있다. 몇 세기 전 작가들이 지금도 어디선가 열띤 토론을 하고 글을 쓴다는 낭만적 상상이 어색하지 않다.

파리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는 여정은 센강에서 시작됐다. 파리를 관통하는 센강의 첫인상은 기대와 다르다. 폭은 하천이라고 해야 걸맞을 만큼 좁고, 수질도 그리 깨끗하지 않다. 아쉬움을 채워주는 건 강변을 따라 늘어선 초록색 가판. ‘부키니스트’라고 부르는 이 가판들은 헌책, LP판 음반, 그림, 엽서 등을 파는데 그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라이너 마리아 릴케 같은 작가들도 이 길을 거닐며 헌책을 사곤 했다.

센강에서 남쪽으로 두 블록 떨어진 뷰슈히 거리에는 T S 엘리엇, 헤밍웨이 등 수많은 작가가 찾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가 있다. 1919년 문을 연 영미문학 전문 서점이다. 20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손꼽히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출간된 기념비적 장소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 문을 닫았다가 1951년 지금 자리에 다시 문을 열었다.

책이 천장까지 빽빽이 꽂힌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작가들이 글을 쓰던 책상과 타자기, 잠을 자던 침대가 놓여 있다. 예술을 사랑했던 서점의 주인은 누구든 하루에 두 시간만 서점 일을 도우면 이곳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덕분에 작가들은 이곳에서 문학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예술가들의 일상이 깃든 장소들

소르본 대학과 뤽상부르 공원을 중심으로 하는 생제르맹데프레 지역에도 유명 작가들의 발자취가 남아 있다. 가장 유명한 장소는 나란히 서 있는 두 카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와 ‘레 되 마고(Les Deux Magots)’다.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 등이 글을 쓰고 문학 토론을 벌였던 아지트와 같은 곳이다. 노천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왠지 모를 아련한 기분에 잠긴다. 작가들도 이곳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봤을까.

여기서 몇 블록만 더 걸으면 1686년 문을 연 파리 최초의 카페 ‘르 프로코프(Le Procope)’를 만날 수 있다.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 볼테르와 같은 이들이 단골이었다.

소르본 대학 방향으로 내려와 헤밍웨이가 즐겨 가던 레스토랑 ‘폴리도르(Polidor)’를 찾았다. 1845년 문을 연 이래 같은 맛과 양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곳이다. 아쉽게도 헤밍웨이가 즐겨 먹었다던 스테이크는 이제 팔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프랑스 가정식 소고기 찜 요리인 뵈프 부르기뇽을 주문했다. 크기와 풍부한 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맛에 홀렸을 땐 천장 가운데 커다랗게 내걸린 ‘폴리도르는 신용카드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몽파르나스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철학자 사르트르의 묘비를 찾아 그가 묻혀 있는 몽파르나스 묘지로 향한다. 기 드 모파상, 샤를 보들레르 등의 작가들이 함께 잠들어 있는 국립묘지다. 입구에 마련된 지도의 도움을 받아 쉽게 사르트르의 묘소를 찾았다. 무덤 위엔 수많은 헌화가 쌓여 있고, 비석은 시민들이 남긴 키스 마크로 물들어 있다. 파리 시민들은 언제든 그를 가까이에서 만나고 이렇게 마음껏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해가 진 뒤 파리의 야경을 볼 수 있는 몽파르나스 타워에 올랐다. 도시의 역사를 보존하고자 개발을 제한하는 파리에서, 몽파르나스 타워는 유일한 고층빌딩이나 다름없다. 56층의 전망대에 올라가 보니 거리의 가로등과 건물 창에서 새어 나오는 빛들이 마치 전구처럼 반짝인다. 밤이 깊어지고, 도시에 켜진 불을 멍하니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 장면처럼 오래전의 작가들이 다가와 말을 걸어줄 것만 같다. 영화 ‘파리는 날마다 축제’ 중에서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당신이 운이 좋아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내는 행운을 누린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 동안 당신이 어디에 살고 있든 늘 곁에 머무를 겁니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파리 글·사진=나보영 여행작가 alleyna20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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