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가 원하니 法을 만들어야 한다? 이 단순한 논리가 각종 '특혜법' 불렀다

입력 2014-10-03 21:40  

공공선택 시각으로 본 사회 <3> 타락한 입법 만능주의

유권자 票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
미래세대 적자예산 점점 키워
의회권력 견제 '헌법장치' 필요



한국 경제는 ‘규제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규제가 많다. 법령에 기초한 규제 건수가 1만5000건에 육박한다는 최근 통계가 이를 입증한다. 정부의 씀씀이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0년에 국민소득 대비 22%인 정부지출이 2005년에는 26.1%로 커졌고, 2013년에는 34.2%로 급증했다. 2002년에 국민소득 대비 16%였던 국가채무도 급증해 2005년 30%, 2013년에는 45%를 웃돌았다.

왜 이렇게 정부 간섭이 많은가? 그 이유를 소상히 말해주는 게 ‘공공선택’론이다. 민주국가에서 ‘입법(立法)’은 국회의 소관사항이다. 국회의원들은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한 정치적 경쟁을 통해 선출된다. 유권자는 정부가 지출을 늘리거나 세금을 줄이면 싱글벙글 웃고, 그렇지 않으면 투정을 부린다. 유권자의 지지를 먹고 사는 정치에서 지출 증가와 적자예산은 필연적이다. ‘적자 속의 민주주의’라는 말도 흥미롭다. 빚을 부담할 미래세대는 태어나지 않았으니 적자예산에 대해 반대투표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우리는 빚을 짊어지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 천부인권이 무색해졌다.

그런 정책들이 나쁘다는 것은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치권은 그런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지표를 위한 선심성 매표행위, 당리당략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다수의 합의만 있으면 내용이 무엇이든 법이 된다는 법의식을 뜻하는 ‘입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는 공공선택론의 인식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매년 수천 건의 법이 찍혀 나와 가히 ‘입법의 홍수’라는 말이 적합할 정도의 법의 남발은 그런 법의식 때문이다.


가격규제, 운임·요금규제, 특정 산업·기업군을 우대하거나 차별하는 ‘편들기·차별입법’, 이익단체들의 요구와 정부부처의 로비를 받아 그들의 입맛에 맞는 법을 만드는 ‘청부입법’ 등 모두가 싸구려 입법이다. 원래 법이란 특정 집단·지역·산업 등을 차별하거나 편드는 내용이 있어서는 안 된다. 집단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어서도 안 된다. 이런 조건을 갖춘 법은 항상 특정한 행동을 금지하는 내용을 갖는다.

금지될 행동은 다른 사람의 자유와 재산을 침해하는 행동이다. 그런 성격을 가진 법이야말로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 자체로 대우해야 한다는 칸트의 ‘정언명령(定言命令)’에 충실한 ‘자유의 법’이다. 이런 법의 테두리 내에서만이 누구나 자유로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주민들이 다수결을 통해 스스로를 다스릴 통치자를 뽑는 민주주의가 추한 싸구려 입법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정권을 교체하는 장점’이 있다는 칼 포퍼의 말에 또는 민주주의를 ‘수(數)의 정치’로 정당화하는 법철학자 한스 켈젠의 실증주의 논리에 만족해야 할까. 그렇다고 답하기에는 민주정치가 남긴 잘못이 너무 크다. 이른바 ‘시장실패’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시장에 개입했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첩첩이 쌓인 규제, 방만한 재정, 통화 확대 등을 불러들여 시장경제를 왜곡했다. 고실업, 저성장, 경제위기 등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병폐를 야기한 게 민주주의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실패’라는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그런 실패가 얼마나 치명적인가는 성장률이 겨우 3% 내외로서 한국 경제가 빠져 있는 저성장의 함정이 또렷이 말해준다. 따라서 시장실패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게 정치실패라는 공공선택론의 탁월한 인식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주목할 것은 정치실패의 원인이다. 정치가들이 부도덕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인간은 제도의 틀 안에서 행동하기 마련이므로 정치적 결정과정을 안내하고 조종하는 정치제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게 잘못됐다면 아무리 훌륭한 경제정책이라도 정치가들은 귀담아 듣지 않고 오히려 나쁜 정책을 채택해 경제를 해친다. 한국의 헌법과 의회 제도를 보면 민주주의에 치명적 결함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입법자율 의회구성, 선거, 표결과 관련된 ‘권력구조’는 헌법에 깔끔하게 구비돼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권력구조가 아니라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는 입법권의 오남용을 막도록 ‘권력을 제한하는 것’인데 애석하게도 그런 제한을 위한 정치제도가 매우 미흡한 게 한국의 민주주의다. 정부지출 증대와 적자예산을 막을 효과적인 헌법장치가 없다. 마음대로 법을 만드는 걸 막을 장치도 없다. 한국 헌법은 자의적인 공권력 행사를 효과적으로 제한할 헌법장치를 마련하는 데 소홀했다. 그 이유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우리 손으로 뽑기만 하면 그들은 사심을 버리고 오로지 양심에 따라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법을 만들고 정부예산을 짜고 집행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런 믿음은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 전통의 ‘프랑스 계몽주의’ 영향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그 전통은 ‘왕(王)의 정치’를 ‘민(民)의 정치’로 바꾸기만 하면 자유와 번영이 저절로 보장된다는 순박한 믿음에서 입법권에 대한 모든 견제장치를 제거해 버리는 우(愚)를 범했다. 그런 잘못된 정치제도를 그대로 두고는 통치자, 국회를 바꾼다고 해서 정치실패가 치유되는 게 결코 아니다. 부채와 규제를 제한 없이 허용하는 정치제도에서는 어떤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그들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자정능력이 전혀 없다는 걸 직시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정치권에 적합한 경제정책을 제안하기보다는 민주정치의 실패를 치유하고 개선할 정치제도 개발에 몰입하는 게 중요하다. 공공선택론이 지적하듯이 필요한 건 입법조세예산 등의 권력을 제한하는 헌법장치의 도입이지 분권형 대통령 중임제 등 권력구조의 재편이 아니다. 입법권, 조세권 등 의회의 권력을 효과적으로 제한할 어떤 헌법적 견제장치가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장치를 규명하고 찾아내는 ‘헌법경제학’을 공공선택론이 개발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 공공선택론의 '제1 인식'

시장실패 막기 위한 케인스주의 정부간섭이 더 큰 실패를 부른다

공공선택론이 등장한 때는 예산을 짜고 나랏돈을 쓰고 법을 만드는 정부 사람들은 공공심(公共心)에서 행동하며 도덕적·지적 능력도 갖추고 있다는 낭만적인 믿음이 지배하던 20세기 중반 이후다. 그런 믿음에서 시장실패를 이유로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강조한 케인스주의가 득세했다. 그러나 영국, 미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늘어나는 것은 정부지출이었다. 그런 시기에 통화주의는 통계자료를 활용해 그 이념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러나 제임스 뷰캐넌은 정치에 대한 현실적 이해야말로 통화주의자들보다도 더 확실하게 케인스주의를 분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믿음에서 공공선택학파를 만든 뷰캐넌과 그 추종자들은 정부 사람들은 소득, 권력, 명예 등 이기심에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시장참여자와 결코 다를 바가 없다는 아주 현실적 인식을 바탕으로 해 민주주의, 관료, 다수결, 정당제도, 입법 등을 분석대상으로 하는 공공선택론의 혁명적 패러다임을 개발, 발전시켰다.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케인스주의의 정부간섭은 그보다 훨씬 더 위험한 정치실패를 불러온다는 게 정치과정에 대한 공공선택학파의 첫 번째 인식이다. 정치실패의 원인과 치유방법을 찾기 위해서 정치과정의 기초가 되는 헌법을 규명했다.

두 번째 인식은 정치실패의 원인은 민주적이라고 해도 그런 공권력을 제한할 헌법이 미흡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입법·재정권을 제한하는 헌법규칙을 개발하는 데 몰입해야 한다는 게 공공선택학파의 세 번째 인식이다.

애덤 스미스 등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전통을 계승하는 공공선택론은 현대경제의 문제와 해법에 대한 현실적 이해, 케인스주의의 효과적인 비판에도 큰 기여를 했다. 1986년 뷰캐넌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은 그래서 당연하다. 스위스가 헌법에 세율인상 한계와 지출한도를 정한 것, 독일이 최근 헌법 개정을 통해 적자예산의 한계와 경쟁적 연방주의를 도입한 것 등은 국가권력의 남용을 막아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공선택론의 헌법경제학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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