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정치권의 '반기문 동상이몽(同床異夢)'

입력 2014-11-02 15:12  


(손성태 정치부 기자,국회반장) “하다못해 마을 이장이나 도의원도 ‘논두렁 정기’라도 받고 태어나야 한다. 하물며 국회의원은...인물 경쟁력만으로 ‘뱃지’를 달기는 힘들다."

‘선량(選良)’으로 일컬어지는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표심을 얻고,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설명할 때 흔히 쓰는 말이다. 이 비유 속에는 관운(官運)에 기대 승승장구해온 공무원 출신 정치인들에 대한 ‘우월의식'이 은연 중 깔려 있다.

입신양명(立身揚名·출세해 이름을 세상에 떨침) 측면에서 라이벌을 찾기 힘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의 이름 석 자가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될때마다 정치권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1944년생으로 현재 71세란 고령 못지 않게 1970년 외무고시에 합격한 후 40여년 동안 외교 공무원으로 한길만 걸어온 것이 최대 약점으로 지목됐다.

한 중진 의원은 “‘온실 속 화초'처럼 커온 반 총장이 서로 물고 뜯어야 하는 현실정치에서 무슨 경쟁력이 있겠느냐”고 일축하기도 했다. 올 초 친박계(친박근혜)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김황식 전 총리와 7선의 정몽준 의원이 서울시장 경선을 놓고 붙었을 때 야당 의원들은 한결같이 ‘싱거운 승부'를 장담했다. 예측은 맞아떨어졌고, 그 근거는 이른바 ‘논두렁 정기론'이었다.

반 총장이 최근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 서 있다. 2017년 대통령선거 1년 전에 그의 임기(2016년 12월 말까지)가 끝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대망론'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속내는 다르지만 대통령선거를 3년 이상 남겨둔 시점에서 여야 할 것 없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진영으로 갈라진 한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노무현 이명박 정권과 함께 한 그의 ‘야당반 여당반'의 특이한 정치이력만 놓고 정치권이 동상이몽에 빠져 있다는 지적이다. 반 총장은 최근 국회 상임위원회의 재외공관 국정감사에서 “‘정치반 외교반’은 도리가 아니다"며 현실정치에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어서다.

여권이 발 빠르게 ‘반기문 카드’를 꺼내든 것은 집권 중반기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이 큰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견제할 목적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이런 징후는 10월29일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두번째 시정연설을 하던 날 포착됐다. 친박계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2017년 대권지형 전망’세미나 주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개헌’과 ‘공무원연금' 문제를 놓고 충돌한 박 대령과 김 대표간 감정의 앙금이 가시지 않은 미묘한 시점이어서 세미나 개최 시기와 주제 등에 대해 온갖 억측이 쏟아져 나왔다.

이날 발제자로 나선 이택수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대표는 최근 여론조사 결과 등을 분석, “대권주자를 인물로만 보면 야권 주자들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여당 내에서) 반 총장을 제외하고는 정권 연장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만약 반 총장이 출마한다면 새누리당 후보로 나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자리에는 서청원, 유기준, 홍문종, 윤상현 등 친박계 의원 30여명이 참석했다.

이 같은 노골적인 ‘반기문 띄위기'는 ‘김무성 견제’와 함께 친박 내 차기 대권주자의 부재에 따른 위기의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새정치민주연합도 반 총장을 야권의 대권후보 간 경선 ‘흥행카드’로 적극 모색하고 있다. 동교동계 좌장격인 권노갑 상임고문은 새정치연합 지도부 등을 만나 반 총장을 차기 야권의 대선주자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친노 진영과 각을 세우고 있는 정대철 상임고문도 최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반 총장이 여권 또는 야권 후보로 대선에 나설 가능성이 모두 있다"며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야 양측 모두 반 총장을 끌어들이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반 총장이 충청도 출신이란 점을 들어 과거 ‘DJP(김대중 김종필)연합’과 같은 집권모델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야당 지도부의 분위기는 좀 다르다. 친노진영과 지도부들은 그를 ‘대선 풀(pool)’에 끌어들이기보다는 ‘불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새정치연합 고위 관계자는 최근 기자들을 만나 “반 총장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그가 새누리당 주자로 대선에 나오려면 우리한테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외교부 차관을 끝으로 집으로 가야 했던 반 총장을 청와대에 자리(대통령 비서실 외교비서관)를 만들었고, 노 전 대통령이 유엔사무총장을 만들려고 애를 썼다.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는 20개국을 돌아다니며 반 총장 선거운동을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한자성어 ‘음수사원(飮水思源)를 인용하기까지 했다. ‘목말라 물을 마시면 그 갈증을 해소한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그 근본인 우물을 누가 팠는지 그 분에 대한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2년여 잔여임기를 남겨둔 반 총장 앞에는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여러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다. 평소 소신대로 은퇴할지 아니면 대선에 출마할지, 만약 출마한다면 어느 당적을 택할지 등은 반 총장 본인은 물론이고 그 누구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는 난제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반 총장은 유력 대선후보군 중 한 명으로 이미 한국 정치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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