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수라를 맛보다…궁중음식 열전

입력 2014-12-22 07:10  

지화자·봉래헌·석파랑…고즈넉한 한옥서 즐기는 궁중만찬


[ 최병일 기자 ]
우리 민족의 5000년 역사에서 가장 화려한 음식문화를 이룬 조선시대 임금들은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궁중음식은 각 지역에서 나는 진상품을 재료로 조리 기술이 뛰어난 주방 상궁들이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궁중음식이라고 해서 우리가 먹는 음식과 사뭇 다를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임금 수라상에 올라가던 음식은 육류나 어류, 채소로 만든 전이나 편육, 김 구이나 산적, 젓갈 등이었다.

같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라도 궁중음식이 특별한 것은 오랜 세월 전승돼온 궁극의 맛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궁중음식은 전통 음식문화의 결정체다. 그런 의미에서 궁중음식 체험은 시간 속으로의 여행이고, 감춰진 우리 민족문화로의 체험여행이기도 하다. 궁중음식은 또한 한국 왕실의 맛을 체험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진귀한 체험을 제공해준다. 궁중음식을 어떻게 만들고, 어떤 종류가 있으며, 궁중음식을 체험할 수 있는 음식점은 어디에 있을까.

자극적이지 않은 식재료 본연의 맛

각 지방의 특산물인 해물, 육류, 채소, 곡식 등을 제철에 맞춰 진상하게 해 궁중음식은 종류가 많고 조리법도 다양하다. 음식을 만들 때는 임금의 바른 정치를 바라는 마음에서 모양이 바르지 않은 채소나 생선은 쓰지 않았다. 모양이 반듯한 식재료와 가장 맛있는 부분만 골라 최고의 맛과 멋을 냈다.

궁중음식은 강한 향신료를 사용하지 않고 짠 반찬이나 매운 찬, 냄새가 많이 나는 찬 등 자극적인 맛을 피해 식재료 본연의 담담한 맛이 나도록 조리했다. 엄격한 법도와 법칙에 따라 짜임새 있게 만들어야 하는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국가에서 지정한 중요무형문화재다. 이에 따라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인 고종과 순종을 모셨던 한희순 주방 상궁(제1대 기능보유자)으로부터 2대 기능보유자 황혜성 씨(2006년 작고)를 거쳐 한복려, 정길자 씨가 3대 기능보유자로서 맥을 잇고 있다.

12첩이 기본… 왕과 왕비 따로 먹었다

조선시대 궁중일상식에 관해서는 1765년 간행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왕이 창덕궁을 출발해 수원 화성에 가서 잔치를 베풀고 다시 궁으로 돌아온 8일간의 식단이 이 의궤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궁중에서의 일상식은 이른 아침의 초조반과 조반(아침), 석반(저녁), 점심 때 차리는 낮것상과 밤중에 내는 야참(야식)까지 모두 다섯 번을 올렸다. 이른 아침 왕은 주로 보약이나 미음 또는 죽을 들었다. 오전 10시께 아침수라를, 오후 5시께 저녁 수라를 받았다. 낮것상이란 점심과 저녁 사이의 간단한 상을 말한다. 야참에는 약식과 식혜, 우유죽 등을 올렸다. 평상시에는 수라간에서 주방 상궁들이 준비한 수라상을 왕과 왕비가 각각 동온돌과 서온돌에서 받았는데, 겸상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수라상에는 상다리가 휠 정도로 화려한 음식을 올렸을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수라상은 왕과 왕비의 건강을 최대로 고려한 건강식이었다. 기본상인 12첩 반상은 두 가지 밥과 두 가지 탕, 찌개, 찜, 전골, 김치, 장 등 12가지 반찬이 올라간 밥상이다. 대개 두 가지 수라는 흰밥과 팥 삶은 물로 지은 찹쌀밥, 두 가지 탕은 미역국과 곰탕이었다.

궁중잔칫상엔 30~40가지 음식

궁중에서는 1년 내내 수많은 행사가 치러졌다. 연례 행사로 정월, 단오, 추석, 동지 등의 명절과 궁안팎 왕족들의 생일에는 수시로 잔치가 베풀어졌다. 의례 중에서 왕과 왕비, 대비 등의 생일과 회갑, 왕세자 책봉과 가례(결혼식), 외국 사신을 맞을 때는 국가적인 경사로 큰 연회를 베풀었다.

궁중 연회에서는 왕과 왕족을 위해 다리가 높은 상을 여러 개 이어 30~40여가지의 음식을 차렸다. 상에는 종이나 비단으로 만든 상화(床花)를 꽂아 호화롭게 장식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왕이나 왕족은 고임상에 차려진 음식을 직접 먹지 않고, 국수와 반찬류 위주의 별미상인 면상(麵床)을 별도로 차렸다고 한다. 면상은 밥 대신 온면, 냉면 또는 떡국이나 만두 중 한 가지를 올리고 반찬으로 편육, 회, 전유화, 신선로 등을 차린 상이다.


한국관광공사 인증 궁중 음식점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10월부터 궁중음식 체험식당 인증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식체험 등 음식을 소재로 한 국내외 관광객들의 수요가 꾸준히고 늘고 있어서 우리 고유의 궁중음식을 널리 알리고 체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다. 최초로 인증을 받은 음식점은 서울의 ‘지화자’ ‘한국의집’ ‘메이필드 호텔 봉래헌’ ‘삼청각’ ‘석파랑’과 전주의 ‘궁’, 경주의 ‘수리뫼’ 등이다. 이들 음식점에서는 오방색의 화려한 담음새가 돋보이는 신선로 고유의 맛과 섬세한 손맛이 살아있는 구절판 등 다양한 궁중음식을 즐길 수 있다. 전통한식과 한옥 체험도 할 수 있다. 설경희 한국관광공사 음식쇼핑팀장은 “다양한 먹거리는 관광의 묘미를 더해준다”며 “궁중음식을 테마로 새로운 관광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화자- 정통 궁중음식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기능보유자였던 고 황혜성 선생과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장 일가가 운영하는 궁중음식 전문식당이다. 1991년 문을 연 이후 정통 궁중음식을 지키고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깔끔하고 정갈하며 궁중음식 정통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 1인 기준 궁중만찬 20만7000원, 궁중진찬 7만4750원, 점심특선 2만3000~4만250원. (02)2269-5834

한국의집-외국인에게 인기 최고

서울 충무로에 있는 ‘한국의 집’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음식점이다. 궁중음식이나 한정식뿐만 아니라 전통예술공연, 전통혼례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다. 한국의 집 조리팀은 각종 요리경연대회에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궁중음식은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원장이 감수한다. 2인 이상 주문해야 하며 대장금정식은 1인당 25만원, 점심특선 2만~4만5000원. (02)2266-9101~3

봉래헌-오감으로 느끼는 궁중음식

서울 외발산동 메이필드호텔의 ‘봉래헌’은 음식점 자체가 예술적이다. 궁궐 양식의 부드러운 처마곡선과 오방색의 화려한 단청, 작은못 하나 사용하지 않는 전통방식으로 지었다. 직원들은 조선시대 궁중나인의 옷을 입고 있어 독특한 느낌을 준다. 27년 경력의 한식 전문 조리장이 호텔이 직영하는 충남 예산농장의 제철 식재료와 전통방식으로 담근 장류를 사용해 품격 있는 궁중음식을 선보인다. 한식뿐만 아니라 한옥과 복식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 연말 특선 10만원, 점심상차림 5만3000원, 점심특선 3만5000~4만원. (02)2660-9020

삼청각-7·4남북회담 만찬장

서울 성북동 삼청각은 7·4남북회담의 만찬을 위해 만든 역사적인 장소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고색창연한 한옥의 진수를 느낄 수 있어 공식적인 연회 장소뿐만 아니라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연회와 공연, 체험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다. 한정식 코스와 일품요리(전복요리, 신선로, 갈비찜 등), 맞춤메뉴가 있으며 한정식 코스인 궁중수라는 19만8000원, 상견례수라 8만2500원. 일품요리 2만4200~3만5200원.(02)765-3700

석파랑-흥선대원군의 별장

서울 홍지동에 있는 석파랑은 흥선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의 사랑채를 그대로 옮겨 지었다. 대문을 들어서면 조선말기 양식의 정원과 3채의 고풍스런 한옥이 눈앞에 펼쳐진다. 석파랑의 궁중 한식은 엄선된 식재료와 직접 담근 장으로 만들었으며 장인들이 만든 전통주도 함께 맛볼 수 있다. 1인 기준 궁중수라 15만5000원, 점심상차림(진연,진찬,수복) 5만5000원~11만원. (02)395-2500

궁-궁중식과 전주음식의 조화

맛의 고장 전주에 있는 ‘궁’은 호남 지역의 식재료와 천연조미료를 사용해 맛이 깊고 풍부한 곳으로 정평이 났다. 고 황혜성 선생에게 배운 정통 궁중식에 전주 지역 특유의 맛을 가미했다. 음식을 중요무형문화재 이봉주 선생의 유기그릇에 담아내 품격을 더한다. 전주한옥마을 안쪽에 있다. 진상 25만원, 선상 20만원, 미상 16만원. (063)227-0844

수리뫼- 음식체험은 물론 한옥스테이까지

경주시 내남면 포석정 근처에 있는 수리뫼는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인 박미숙 원장이 직접 조리하는 궁중음식점이다. 궁중음식을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한식교육체험, 한옥스테이 등을 할 수 있다. 상은 수경당 자, 단, 품 찬 이 있으며 3만5000~10만원. (054)748-2507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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