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이혁 전 문교부 장관 "삶의 정점은 아흔 살,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라"

입력 2015-05-01 21:01  

1년에 한 권씩…10번째 에세이집 낸 92세 권이혁 前 문교부 장관

서울대 총장·3개 부처 장관 역임
"화려한 이력, 어쩌다 됐는지 궁금"
'의사 선생님' 불리는 게 가장 좋아



[ 이미아 기자 ] “아흔 살이 인생의 정점이라고 봐요. 아흔 살 이전의 사람들은 삶의 오르막길을 걷는 거고, 그 이후엔 내려오는 거죠. 인생길 생각보다 길어요.”

지난달 23일 서울 동숭동 서울대 의대 국제관에서 만난 권이혁 전 문교부(현 교육부) 장관(92·사진)은 느리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현재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인 그는 “예방의학 분야를 전공한 나로선 지금 세상이 공중보건과 백신의 발달로 ‘100세 시대’ ‘120세 시대’란 말이 당연하게 느껴진다”며 “내 말이 희망이 된다는 사람이 많아 그저 기쁠 뿐”이라고 덧붙였다.

권 명예교수는 지난 3월 자신의 10번째 에세이집 ‘유머가 많은 인생을 살자’(신광출판사)를 펴냈다. 2006년부터 10년째 1년에 한 권씩 자신의 호 ‘우강(又岡)’을 딴 ‘우강 에세이집’을 내고 있다. 주로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대한 단상이나 자신이 만났던 인물에 대한 회상, 인생관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그는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다 보니 돌아볼 추억도 많다”며 “딱 10년만 내 인생의 이야기를 1년에 한 번씩 써내고 싶었다”고 책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또 “전문 작가가 아니다 보니 글 실력은 영 별로”라며 “그저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내년에도 책을 낼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단다.

강산이 아홉 번 넘게 변한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권 명예교수 앞에 붙은 수식어는 여러 번 변했다. 1942년 경성제국대(서울대의 전신) 의대 재학 시절엔 독립운동단체 ‘조선민족해방협동당’ 일원으로 활동했다. 1945년 초 단체 가입 사실이 탄로 나 경찰을 피해 평안도의 한 탄광으로 피신했다가 8·15광복 후에 돌아와 공부를 마쳤다. 이후 서울대병원 원장과 서울대 총장, 문교부 장관과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장관, 환경처(현 환경부) 장관, 성균관대 이사장 등을 지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의 화려한 이력에 대해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정말 궁금하다”며 “그때만 해도 위에서 시키면 하라는 식이었지 지금처럼 하마평이 무성하거나 미리 귀띔을 받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또 “어떤 경력이 있든 상관없이 ‘의사 선생님’이라고 불러 주는 걸 제일 좋아한다”고 말했다.

권 명예교수는 삶의 시기에 맞는 인생의 좌우명으로 세 가지를 들었다. 인생의 꼭대기를 향해 갈 땐 ‘여유작작(餘裕綽綽)’과 라틴어 격언인 ‘페스티나 렌테(festina lente)’를 기억하라고 권했다. 그는 “여유작작이란 말은 매사에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일을 해나가라는 뜻이고, 페스티나 렌테는 천천히 서두르라는 의미”라며 “정신적 여유를 잃지 말아야 몸도 여유가 생기고 무엇이든 쉽게 포기하지 않게 된다”고 풀이했다. 아흔 이후에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은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고 했다. 그는 “유유자적하게 지낸다는 건 더 이상 뭔가에 집착하지 않고 일도 놓는다는 뜻”이라며 “삶의 마지막 순간도 가볍고 반가운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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