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전투식량

입력 2015-05-03 20:3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갓난아기용 분유는 원래 몽골 기병대의 전투식량이었다. 육포도 빻아 갖고 다니며 물에 타 먹었다. 얇게 썬 고기와 채소를 즉석에서 데쳐 먹는 샤부샤부 역시 전장에서 시작됐다. 미국 남북전쟁 때 인스턴트 커피가 나왔고 스페인 내전 중 설탕 입힌 초콜릿이 등장했다. 군용 건빵과 별사탕은 일본이 만들었다.

중세 전투식량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비스킷이다. 지금 같은 과자가 아니라 그냥 밀가루를 돌덩이처럼 딱딱하게 구운 것이어서 물에 적셔 먹어야 했다. 근대적인 전투식량은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왔다. 프랑스 정부가 대량의 음식을 값싸게 보존하는 방법을 1만2000프랑에 공모한 결과 병조림 아이디어가 뽑혔다. 깨어지기 쉬운 단점은 영국에서 통조림 제조법 특허가 나오면서 해결됐다. 통조림의 최전성기는 1차대전 때였다.

2차대전 중에는 미군의 C레이션이 인기를 끌었다. 빵과 고기뿐만 아니라 과일, 초콜릿까지 포함된 패키지 형태였다. 6·25 때 미군에게 얻은 C레이션 한 개는 암시장에서 쌀 한 되 값에 팔리기도 했다. 우리 군인들은 그 전까지 주먹밥이나 미숫가루를 먹고 싸웠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C레이션을 받고 명절날 고급 선물세트를 받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그러나 미군을 위한 C레이션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식 전투식량 개발에 나서 1967년부터 밥과 김치, 두부, 꽁치 등으로 구성한 K레이션이 나왔다. 발열팩 전투식은 1996년 강릉 무장공비 간첩사건을 계기로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MRE(meals ready to eat)를 1980년대에 선보인 이후 유통기한 3년짜리 피자를 내놓는 단계까지 왔다.

우리 군이 전투식량 대신 민간 아웃도어형 식품을 장병 훈련에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그동안에는 뜨거운 물에 데워먹는 ‘I형’, 물을 부어 먹는 ‘II형’, 특전부대원들을 위한 ‘특전형’, 발열체로 데워먹는 ‘즉각취식형’의 4종류뿐이었다. 이를 전투식량 24개 유형, 특전식량 12개 유형으로 다양화하고 카레나 비빔밥 등을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캠핑·등산·낚시 등 레저용으로 개발한 민간 아웃도어형 식품은 맛이 좋고 메뉴가 다양하다. 게다가 값도 3000원 안팎으로 군의 전투식량(5000~8000원)보다 싸다. 여태까지가 군의 기술이 민간으로 확산되는 군수(軍需)시대였다면 이제는 민간의 기술이 군으로 확산되는 민수(民需)시대라 하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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