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국회선진화법 그리고 무능국가

입력 2015-06-07 20:36  

"'싸움국회' 막아보자던 선진화법, 경제 발목 잡는 '불임국회'만 초래
법안처리 거래폐습 내려놓고 민주주의 다수결 원칙 회복을"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스웨덴 사회학자 군나르 뮈르달은 저서 ‘아시안 드라마’(1968)에서 2차 세계대전 후 동남아의 많은 신생국가가 경제개혁과 국가발전에 실패한 이유를 그들이 ‘연성국가(soft state)’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연성국가는 부패한 전통적 사회세력이 정부보다 강력해 국가의 규율이 무너지는 나라를 말한다. 이런 국가에서는 정부가 압력집단·뇌물공여자·범죄자 등에게 장악되거나 끌려다녀 애초부터 발전에 필요한 법·제도·정책을 만들거나 집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경성국가(hard state)’는 국가의 힘이 강력해 사회세력을 제압하는 나라다. 이런 나라들은 비록 많은 국민이 반대하더라도 국가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면 각 영역 간 이해(利害)를 조정하고 어려운 결정을 강행할 능력을 가진다. 경성국가는 일본·대만·싱가포르 등 대부분 동아시아에 있으며, 20세기 후반 극적인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肩蹄?

박정희 시대의 한국은 대표적 경성국가라고 국내외 전문가들은 인정한다. 국가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필요하지만 어려운 정책을 과감하고 신속히 결단하고 도입해 국민의 에너지를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집결시키는 데 성공했다. 1·2·3차 5개년 경제개발계획기간에 한국 경제는 연 8.3%, 11.4%, 11.2%의 초고속 성장을 이뤘다. 국민은 기아(飢餓)를 면하고 능력과 자신감을 증대시키고, 경제규모가 5~6배 팽창함에 따라 기업도 몇 배 커져 청년들의 일자리가 해결되고 과장, 부장으로 승진했다.

국가의 힘이 커지면 그만큼 민주주의적 절차, 국민의 자유와 권리 등이 희생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극빈과 좌절이 넘치던 시대, 대다수 국민에게 이보다 큰 기쁨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경제자립과 성장의 ‘시대적 과제’를 수행함에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의 유능한 정치체제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한국은 세계 어떤 후진국보다 못한 연성국가로 전환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후 자신이 추진한 어떤 개혁도 혁신도 이룰 수 없었다. 과거 연성국가들은 힘이 약해 부패한 관료, 뇌물과 범죄자의 포로가 된 반면 이 정권은 ‘국회선진화법’이란 ‘다수결 부정법’을 도입해 거대 여당이 스스로 소수 야당에 인질로 잡히는 코미디를 만들어냈다.

2012년 선진화법 도입 이후 야당은 이 거대한 권력을 최대로 즐기고 있다. 국회 구성과 국정원 댓글사건을 빌미로 2년, 세월호 논란으로 1년간 국회를 파업하거나 거부해 국민이 선출한 거대 여당의 국회를 고장내는 데 성공했다. 정부가 경제활성화·일자리 법안이라고 애걸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관광진흥법, 의료법 따위는 아예 ‘중점저지법안’으로 선정해 처리를 막고 있다.

원래 야당은 정권의 실패를 원한다. 따라서 이렇게 집권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일을 훼방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선진화법은 국민이 선택한 여당의 책임정치를 막고 소수야당에 국가권력을 맡기는 반(反)민주주의적 반헌법적 법이 된다. 왜 민주주의 원리를 ‘다수결’이라 하는지, 사회적 타협의 본산인 유럽 민주주의 선진국가에서도 이런 법이 없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선진화법 이후 국가정책과 법안처리는 여야 정당·의원 간 사물(私物)처럼 흥정하고 거래하는 관행이 섰다. 여야 담합의 일처리는 국회의 입법 권력을 거대하게 키워 속으로는 여야 의원 모두가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고도 한다. 집권여당은 무능한 정치를 해도 선진화법과 야당의 발목잡기를 탓하며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회도, 민주주의도 나날이 타락해가고 있다. 선진화법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세계 초유(初有)의 무능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철폐에 야당은 당연히 반대하고 여당도 적극적이지 않아 국회에서의 해결이 난망한 형편이다. 이것이 국가를 위난에 빠뜨리는 법이라고 판단한다면 국민이 국민투표를 청원해서라도 그 철폐를 시도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영봉 < 세종대 석좌교수·경제학 kimyb5492@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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