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백발 저우융캉

입력 2015-06-12 20:51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삼천 장이나 되는 흰 머리/ 온갖 시름으로 올올이 길어졌네/ 알 수 없어라 거울 속 저 모습/ 어디서 늦가을 무서리 맞았는지(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이백의 ‘추포가(秋浦歌)’ 연작 17수 중 15수다.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그가 추포에 와서 거울을 보고 너무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 지은 시다. 이 시에서 그는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이라는 과장법을 썼다. 근심으로 허옇게 센 머리카락 길이가 3000장(약 10㎞)이나 된다고 했으니 허풍이 좀 센 편이지만, 이는 머리털보다도 끝없는 고뇌와 슬픔의 길이를 은유한 것이리라.

백발(白髮)은 모발의 멜라닌 부족으로 생긴 자연현상만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이나 그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뜻하기도 한다.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주흥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자문(千字文)을 다 짓고 머리가 하얗게 돼버렸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같은 글자가 겹치지 않게 4자씩 짝을 지은 250구(句)를 하룻밤 새 완성했으니 오죽했겠는가. 그래서 천자문을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른다. 프랑스 혁명기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단두대에 섰을 때 머리가 온통 백발로 변해 있駭鳴?한다.

흰머리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기는 자연적인 노화현상이다. 적당한 백발은 지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성서에서는 ‘영화의 면류관’ ‘인생의 연륜으로 지혜가 많은 자’ ‘쇠잔함’을 두루 통칭한다. 정신적인 작용이 그만큼 외형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흔하지 않다.

엊그제 무기징역형을 받은 중국 실력자 저우융캉(周永康)의 최후진술 장면이 눈길을 끈다. 목소리에 힘이 없고 얼굴이 초췌한 것이야 그럴 수 있지만 몇 달 새 검은 머리가 완전히 백발로 변해 버렸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부패척결의 칼날 아래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 심정이 어땠을까. 그 전에는 염색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화무십일홍의 권력무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저우융캉은 이미 처벌된 링지화 전 통일전선공작부장, 보시라이, 쉬차이허우 전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신4인방’의 우두머리로 꼽혔다. 시진핑이 정치투쟁에서 승리하면서 마오쩌둥 시대를 닮아간다는 평가가 그래서 나온다.

그런 와중에 그는 어쨌거나 사형을 면하는 대신 백발을 얻었다. 공개재판을 통해 반부패 의지를 다질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의외로 평범한 장면을 연출한 시진핑의 고민도 ‘백발’ 못지 않았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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