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규제 우려에 바이오주 급락
[ 이정선 기자 ] 말라리아 같은 기생충 감염 치료약인 ‘다라프림(Daraprim)’. 지난달만 해도 한 알에 13.5달러(약 1만6000원)였던 이 약의 가격은 하룻밤 새 750달러(약 88만원)로 껑충 뛰었다. 미국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제약사인 튜링이 62년 전 출시된 이 약의 소유권을 지난달 인수한 직후 급격히 가격을 올린 탓이다.
환자와 의료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튜링처럼 급작스레 약값을 수십배 올린 제약사의 폭리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미국 제약업계가 시끄럽다. 미국의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 정치인들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약값 문제가 미국 의료시스템에 대한 논란으로 번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번에 50배 넘게 인상
2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전 헤지펀드 매니저였던 마틴 슈크레리가 설립한 튜링은 지난달 다라프림의 소유권을 인수하자마자 약값을 한 알당 13.5달러에서 750달러로 55배 인상했다. 몇 년 전엔 1달러에 팔리던 약이다. 다른 약에 내성이 있는 환자들의 결핵치료제로 쓰이는 사이클로세린도 지난달 로델리사가 비영리법인인 차오센터로부터 제조·판매권을 인수한 뒤 30알짜리 캡슐 가격을 종전의 500달러에서 1만800달러로 올렸다.
제약회사 빌리안트도 2013년 심장질환에 쓰이는 이수프렐, 니트로프레스 등 두 종류의 약에 대한 소유권을 인수한 뒤 약값을 각각 525%, 212% 대폭 올렸다. NYT는 “공급 부족에 의한 가격인상이 아니라 오래된 약을 고가의 전문 약품으로 둔갑시키는 비즈니스 전략에 따른 가격인상”이라고 꼬집었다.
스테판 칼더우드 미국 전염병학회 회장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가격을 급격하게 올리는 것은 불공정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 체계를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제약사들은 환자 수가 많지 않은 약의 특성상 가격을 올려야 수익성을 맞출 수 있다고 항변한다. 슈크레리 대표는 “약값을 올리면 환자를 위해 품질을 개선하는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가격인상을 이유로 비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치인 가세로 논란 가열
약값 폭리 논쟁은 정치권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특정 질병을 위한 치료제로 폭리를 취하는 것은 잔인무도한 일”이라며 “약값 인상에 대응하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튜링에 21일 편지를 보내 가격인상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다.
정치권의 이 같은 발 빠른 움직임은 취약한 미국의 의료시스템에 불만을 가진 유권자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 ?OECD)에 따르면 2013년 기준 미국의 1인당 약값 지출액은 1034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같은 기간 OECD 평균 지출액은 508달러 정도로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의 급격한 약값 인상이 미국의 건강보험 체계에 부담을 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치권이 제약사들의 약값 규제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주가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21일 뉴욕증시에서 나스닥 바이오기술주 지수는 5% 이상 급락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