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방경제 시대 걸맞게 하도급법 개정돼야

입력 2015-12-07 17:37   수정 2015-12-08 05:21

"가격경쟁력 생각말라는 하도급법
중소기업 보호는커녕 외국기업만 유리
만연한 반대기업 정서 바로잡아야"

신현윤 < 연세대 교학부총장, 한국상사법학회장 >



지난 수년간 경제민주화의 주요 이슈로, 갑(甲)의 횡포를 차단하기 위해 많은 법률이 제·개정됐다. 가장 대표적인 법이 하도급법이다. 하도급법은 경제발전이 급속히 진행되던 시절, 대기업을 정점으로 수직적 거래관계에 있는 원·수급사업자 간의 불공정거래 행위를 해소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하도급법은 몇 차례 개정으로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기술자료를 탈취하거나 유용한 경우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토록 했고, 지난번 개정에서는 부당한 단가인하, 발주취소, 반품행위에 대해서까지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 적용토록 했다. 이로써 하도급 분야에서 소위 갑의 횡포와 같은 불공정거래행위가 발붙이기 어렵게 됐다. 또 하도급법 강화에 따라 대·중소기업의 거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중소기업의 매출증가 등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부작용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입장에서는 국제경쟁력 약화와 하도급 거래관계의 단절과 같은 부작용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 즉, 완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속적으로 가격인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국내 중소기업에 부품 납품단가를 인하해 달라고 요구하면 하도급법 위반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이 외국 거래처로부터 부품 구매물량을 확대하거나 공장을 아예 해외로 이전함으로써, 국내 중소기업 보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하도급법이 오히려 국내 기업의 성장을 저해하는 역차별적 요인이 되고 있다. 갑의 횡포를 규제하려는 하도급법이 다른 한편으로 국내의 갑과 을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하도급법을 적용받지 않는 해외 경쟁기업들은 국내외 시장에서의 가격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등 하도급법의 본래 목적과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부작용의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도 하도급법이 국내기업 간 거래가 중심이 되는 산업구조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는데, 개방경제시대의 글로벌 경쟁체제 하에서는 이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그동안 하도급법이 수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충분한 법리적 검토보다는 정치적 타협으로 개정이 이뤄져 과잉입법의 소지도 크다. 개정법에 따르면 원사업자가 일반적으로 지급하는 대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 대금을 결정할 경우 그 결정가액의 ‘상당성’이나 ‘현저성’에 대한 구체적 검토나 원사업자의 경영상 불가피성 등에 관계없이 일단 금지하고, 위반시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고의·과실의 입증책임을 모두 원사업자에게 지우도록 하는 것은 본래의 규제목적을 넘어 자칫 사적 자치의 원칙까지 크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

원사업자의 중소 수급사업자 이익에 대한 부당한 침해를 금지하고, 공정한 거래를 보장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도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률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국민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 재고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 때 일방적인 규제를 통해 경제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며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 해결책을 찾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 정서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선악의 개념으로 보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양하고, 상호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거래관계가 촉진될 수 있도록 하는 입법자의 지혜가 요구된다.

신현윤 < 연세대 교학부총장, 한국상사법학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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