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부자증세 아니라 복지지출 통제해야

입력 2017-08-21 19:08  

"대기업 법인세 부담 결국 서민 몫
소득세 세율인상보다 세원(稅源) 넓히고
급격한 복지지출 증가세 막아야"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



정부의 세법개정안은 감세를 골자로 한 ‘2008년 세법개정안’만큼이나 사회적 논란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번 세법개정안은 소득세와 법인세의 최고세율구간을 신설하고 세율을 인상하는 ‘부자증세’가 핵심이다.

복지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밝히고 국민적 동의를 얻으려는 현 정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부자증세가 또 하나의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외치면서 ‘복지는 공짜’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던 전 정권만큼이나, 현 정부도 ‘서민감세-부자증세’를 표방하면서 ‘복지는 공짜, 세금은 부자의 몫’이란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

얼마큼 부자가 세금을 더 내야 정의로운지는 가치판단의 문제로 사회적 합의를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다. 분명한 것은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세금을 부자에게 부과해도 그 부담이 서민들에게 귀착된다면 정의롭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부자이고 중소기업은 가난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법인세제를 기형으로 만들고 서민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법인세는 기업이 내는 세금이 아니라 주주들이 내는 세금이다. 기업의 판매수입에서 임금, 중간재화 비용, 이자비용을 제외하면 주주의 소득인 당기순이익이 남는데, 여기에 법인세가 부과된다. 기업의 규모에 관계없이 주주는 소액주주와 대주주로 구성된다. 대기업일수록 소액주주의 지분율이 높고, 중소기업일수록 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게 현실이다. 대기업에 중과세할 경우 대기업의 소액주주가 중소기업의 대주주보다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또 법인세로 당기순이익이 줄면 임금과 가격조정을 통해 세부담은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결국 법인세의 대부분은 서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소득세의 경우도 최고세율을 인상한다고 해서 소득재분배가 개선되지는 않는다. 소득세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큰 선진국은 누진도가 크지 않은 반면, 과세자비율이 높아 세수규모가 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영국은 상위 10%가 하위 10%보다 소득은 36배 많고, 세금은 44배 많이 내고 있다. 한국은 상위 10%가 소득은 11배 많은데, 세금은 750배나 많이 낸다. 소득세의 누진도가 영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높지만, 소득재분배 개선율은 현저히 낮다. 그 이유는 과세자 비율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의 과세자 비율은 90%로 우리나라의 53%보다 월등히 높아, 국내총생산(GDP) 대비 소득세수의 비중은 영국이 9.1%로 한국의 3.7%보다 2.5배나 높다. 소득재분배는 누진도뿐만 아니라 세원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의 소득세 구조를 고려할 때 최고세율을 올려 누진도를 높이는 것보다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 세원을 넓히는 것이 시급한 이유다.

새로운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현 정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번 도입한 제도는 폐지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장기적인 복지재정 규모와 재원조달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기존의 복지제도에 인구구조 변화만을 고려해도 우리나라의 GDP 대비 복지재정 규모는 2040년에 27%를 넘어서 2060년에 약 34%에 달할 전망이다. 선진 복지국가들의 복지지출 비중은 1990년대 수준에서 안정화되고 있다. 큰 변화가 없다면 2040년에 한국의 복지지출은 세계 최고수준이 된다. 국가채무의 적정수준을 유지하면서 빠르게 증가하는 복지재정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2060년에 조세부담률은 약 35%, 국민부담률은 약 45%, 재량지출은 GDP의 8% 이하로 축소해야 한다. 부자증세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복지지출을 적정수준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국민 모두가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정책 결정자들의 자세일 것이다.

조경엽 <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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