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1월07일(11:0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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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경영 환경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끊임없는 구조혁신 없이는 어떤 기업도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기업 구조조정의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채권은행 중심의 사후적·방어적 구조조정으로는 기업의 생존을 담보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과감하고 선제적인 구조혁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는 사모펀드들의 역할이 부각되는 이유다. 마켓인사이트는 자본시장의 꽃, 사모펀드 운용사들이 성공적으로 구조혁신을 이끌어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고 산업 발전에도 기여한 성공 사례를 집중 탐구해 시리즈로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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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PEF) 운용사들끼리의 투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좋은 회사를 값싸게 인수하기는 어려워졌어요. 혁신을 동반한 구조조정을 통해 어려운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이 PEF들의 역할이자 생존 전략이 될 겁니다”(곽동걸 스틱인베스트먼트 대표)
‘토종 사모펀드의 맞형’ 스틱인베스트먼트가 2013년에 인수한 대성엘텍은 영업적자에 허덕이는 기업이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자동차용 멀티미디어(AVN·오디오 비디오 네비게이션) 박스를 생산해 현대모비스 등에 납품하는 단순 하청업체에 불과했다. 마진이 높은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로 변화를 꾀했지만 기술 부족으로 불량품이 많이 생겨 되려 적자 폭만 키웠다. 신규사업으로 추진했던 소형 액정 디스플레이의 백라이트유닛 등을 생산하는 '정보기술(IT)'사업도 회사 재무에 약영향을 끼쳤다.
2011년 창업주 고(故) 박병헌 회장이 별세한 후 회사는 더욱 휘청거렸다. 연이은 영업적자에 차입금 상환 압박, 신규 투자금 부족에 시달렸다. 상장사 자격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 박 회장의 뒤를 이어 2세 경영을 맡은 박상규 대표는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는 신규 자금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적자회사에 선뜻 돈을 넣겠다는 투자자는 찾기 어려웠다. 때마침 3호 블라인드 펀드 결성을 마친 스틱인베스트먼트가 투자에 긍정적으로 나서면서 대성엘텍은 ‘턴어라운드’의 기회를 잡게 된다.
◆자동차 인포테인먼트 시장 성장에 베팅
곽동걸 대표가 이 회사에 주목한 건 AVN박스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었다. 곽 대표는 “AVN 박스가 음악, 비디오 같은 엔터테인먼트 뿐 아니라 자율주행 정보 등 인포메이션까지 제공하며 자동차의 중심이 될 것으로 봤다”며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사들이 공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스마트차량 인포테인먼트(IVI·In-Vehicle Infortainment) 플랫폼으로 진화하면 완전히 다른 회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영업적자의 주범이던 IT사업부를 떼어낼 경우 매년 150억원 안팎의 상각전 영업이익(EBITDA)이 예상돼 투자해봄직하다고 판단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PEF가 늘어나며 더이상 좋은 회사를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는 투자가 어려워졌다는 위기감도 투자 결정에 한 몫했다. 곽 대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소수 지분을 사들여 기업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동적인 투자가 아나라 경영권을 확보해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적극적인 투자를 해야한다고 스틱인베스트먼트의 다른 파트너들을 설득했다.
결국 스틱인베스트먼트는 2013년 8월 200억원 규모의 대성엘텍 유상증자에 참여해 27.9%의 지분을 확보했다. 170억원어치의 전환사채(CB)도 사들였다. CB를 보통주로 전환하면 스틱인베스트먼트의 지분율은 50% 이상으로 불어나 최대주주에 오를 수 있었다. 곽 대표는 “기존 경영진이 구주를 매각해 돈을 챙기기보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신규 자금 수혈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신규 자금으로 채무 상환 … 숨통 트인 재무구조
370억원의 투자금으로 만기가 임박했던 채무를 갚고 곧바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IT사업부 등 적자를 보던 사업부들은 단번에 정리했다. 부실을 한꺼번에 떨어내다보니 영업적자가 240억원까지 불어나며 거래소로부터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곽 대표는 “의욕이 과하다보니 일어난 일”이라며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식은 땀 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부실 사업부 정리 후 현대자동차의 인도 시장 진출로 생산이 늘면서 회사 실적은 빠르게 회복했다. 인수한지 5개월만에 분기별 영업손실이 흑자로 돌아섰다. 2014년 매출은 3926억원으로 2013년과 비교해 23% 늘어났다. 영업이익도 70억원을 기록하며 관리종목 지정도 해제됐다.
“재무적으로 회복했으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회사 가치를 끌어올릴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이한주 스틱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
스틱인베스트먼트가 대성엘텍을 인수한 건 단순히 숫자만 좋게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회사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신감의 배경엔 스틱의 경영 전문가 조직인 '오퍼레이션파트너스그룹(OPG)'이 있었다. 2008년 국내 대기업에서 대표급으로 활동하던 인재들을 영입해 창설한 조직이었다.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주를 이루던 시절 초기 기업들을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줬지만, 사모펀드의 비중이 커지면서 경영권 인수 기업의 턴어라운드를 돕는 것으로 역할이 늘어났다.
◆OPG, 대성엘텍 기업가치 상승의 히든카드
대성엘텍에 전문경영인을 파견해야겠다고 결정하자 OPG 창단멤버인 박계현 사장이 자진해서 나섰다. 박 사장은 LG엔시스 대표를 역임했던 인물로 이공계 출신의 전문경영인(CEO)이다. 외환위기(IMF) 시절이던 1999년 구조조정 대상이던 LG전자의 컴퓨터사업부(서버컴퓨터)를 맡아 흑자 사업부로 탈바꿈 시키는 등 기업의 부실을 떨쳐내고 한단계 성장시키는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 사장은 “경영인으로서의 역량을 모두 쏟아부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심정으로 자원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이 대성엘텍에 처음 발을 디딘 건 2015년 4월 1일이었다. 스틱인베스트먼트가 대성엘텍을 인수한 지 1년6개월만이었다. 회사의 실적은 좋아졌지만 박 사장이 보기엔 생산에서 영업까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게 하나도 없었다. ODM으로 제작했던 일부 제품의 불량률은 20%를 넘었다. 구동 불량, 지시 불량 등 수많은 결함이 쏟아졌지만 명확한 이유를 찾아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대책을 마련할 때도 연구소, 생산본부, 영업본부 등 담당부서 사이에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고 때로는 분위기가 과열되기도 했다.
박 사장은 “구조조정은 부실 사업부를 정리하고 숫자를 일시적으로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회사의 체질 개선을 위해 사업 내용을 바꾸고 기술이나 제품의 품질도 글로벌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처음 내건 슬로건은 제품 혁신이었다. 자동차 부품이 아닌 4차혁명에 부합하는 IVI플랫폼을 직접 설계·제작하는 ODM회사로 한단계 도약하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스틱인베스트먼트 역시 단기 실적보다 회사의 가치가 높아질 수 있도록 기술 투자에 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OEM에서 ODM으로...제품·품질 혁신으로 ‘월드클래스 300’ 선정
박 사장은 “OEM업체는 고객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지만 ODM업체는 창조적인 생각을 해야한다”며 “연구소, 영업, 품질, 구매, 생산까지 모든 부분의 역량강화가 필요하다”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 다행히 대성엘텍에는 숙련된 장기근속자가 많았다. 기술 개발을 주도하는 연구원들과 제품 설계를 맡을 전문 인력은 신규 채용을 통해 해결했다. 인수 당시 70명이었던 본사 인력은 4년만에 100명까지 불어났다. 국내 유력 기술기업과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음성인식은 셀바스AI, 무선망을 이용한 소프트웨어 수정 및 데이터 수집은 코나에스, 모션인식은 전자부품연구원(KETI) 등이 맡기로 하고 글로벌 IVI플랫폼 개발에 돌입했다.
제품 혁신과 함께 품질 혁신 또한 그동안 풀지 못한 숙제였다. 박 사장은 품질혁신을 위해서는 현장과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매일같이 품질 불량을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아침 8시20분에 평택 공장과 청도 공장, 중국의 천진 공장 직원들과 함께하는 화상회의를 정례화했다. 참여인원은 총 30명. 박 사장을 포함한 임직원과 각 부서 본부장, 실무 직원까지 참석해서 약 30분간 불량 등의 제품 품질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시간이 걸렸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20%를 넘었던 불량은 10% 이하로 떨어졌으며 올 4월부터는 ODM제품 불량률 ‘0’라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해나가고 있다.
4년간의 노력으로 ODM 매출 비중은 인수 당시인 2013년 25%(766억원)에서 지난해 35%(1233억원)까지 높아졌다. 올해 상반기까지는 38%까지 늘었다. 2020년까지는 ODM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박 사장은 “현재 발생하는 수익 대부분이 ODM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ODM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첨단운전자보조장치 전용 신제품 ‘네오다스’도 중요한 성과물이다. 네오다스는 기존의 AVN 박스에 차선이탈경고시스템(LDWS)과 전방추돌경고시스템(FCWS) 등의 주행기능이 결합된 제품이다. 운전 중 위험상황이 감지되면 경고등·경고음이나 시트에 진동을 가해 운전자에게 전달하게 된다. 올해 8월 국토교통부의 대형 사업용 차량 차로이탈경고장치 의무 장착 법제화 규격테스트를 통과했으며 르노삼성, 혼다, 도요타 등에 납품하는 일본의 자동차부품업체 알파인 등에 제품을 공급키로하면서 양산에 돌입했다.
네오다스만큼 자랑스러운 게 지난 4월 ‘월드클래스 300’ 지정이었다. 박 사장은 “월드클래스300은 중소기업 중 혁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춘 곳을 선발해 국책과제를 맡기며 연구개발비 및 마케팅 등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라며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던 회사가 국가로부터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자식이 대학 합격한 것보다 더 기뻤다”고 말했다. 대성엘텍은 월드클래스 300 선정을 통해 98억원 규모 사업비를 확보했다. 신용등급도 'BB-'에서 'BB+'로 두단계나 높아졌다.
대성엘텍이 월드클래스300으로 지정되며 맡은 국책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스마트 모듈형 인포테인먼트(IVI)플랫폼’개발이다. 오는 2021년까지 5년간 커넥티드카를 기본으로 클라우드 기반 첨단 서비스를 구현할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다.
ODM업체로의 변화, 4차혁명에 도전하는 대성엘텍의 가치는 시장에서 먼저 알아주고 있다. 현재 대성엘텍의 시가총액은 1600억원. 스틱인베스트먼트가 인수할 당시 회사가치가 600억원 안팎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5배 이상 불어났다. 국책과제로 맡았던 IVI플랫폼 제품이 상용화되면 기업 가치는 몰라보게 달라진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 ICT업체·자동차부품업체 대성엘텍에 눈독
내년 8월이면 스틱인베스트먼트가 대성엘텍에 투자한지 만 5년이 된다. 실적 상승, ODM 비중 강화, IVI플랫폼 개발업체로의 변화 등 수없는 내부 혁신을 이뤘다.
이한주 스틱인베스트먼트 수석심사역은 “인수 이후 지금까지 다진 회사 변화의 기반이 내년부터는 실적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이라며 “2020년에는 매출 5000억원에 영업이익률을 5% 이상 기록하는 회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수석심사역은 “구체적인 자금회수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적정한 시점에 매각 작업이 있을 것 같다”며 “금액도 중요하지만 회사의 기업가치를 꾸준히 높여줄 수 있는 좋은 주인을 찾는 것 역시 스틱인베스트먼트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중 자동차부품사업에 진출하고 싶은 기업이나 자동차 부품사 중에서 전장 부품 분야를 강화하고 싶은 업체들이 대성엘텍 투자에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동훈/정영효 기자 lee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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