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국 휩쓰는 라면·화장품

입력 2018-01-24 17:49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야생 밀을 발견한 메소포타미아인은 이를 ‘신의 선물’이라고 불렀다. 이것이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면(麵·noodle)의 시대가 열렸다. 조리하기 쉽고 먹기 편한 면은 곧 ‘누들로드’를 타고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다.

면 제조법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눈다. 반죽을 길게 늘여서 막대기에 감아 당기는 소면(素麵)과 작은 통 사이로 눌러 뽑는 압면(押麵·냉면), 칼로 써는 절면(切麵·칼국수나 우동), 짜장면처럼 양쪽으로 길게 늘이는 납면(拉麵·일본 라멘), 쌀을 이용한 하분(河粉·쌀국수) 등이다.

이 가운데 중국의 납면은 일본의 라멘, 한국의 라면으로 이어졌다. 인스턴트 라면은 중일전쟁 때 중국군이 건면(乾麵)을 튀겨서 휴대하고 다니던 것에서 유래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은 일본의 닛신식품이 닭뼈 육수맛을 낸 ‘치킨라멘’을 내놓은 게 1958년이다.

우리나라에는 1963년 들어왔고 정부의 혼분식 장려에 힘입어 국민적 대용식이 됐다. ‘국민 간식’의 인기를 바탕으로 맛도 다양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이제는 세계 130여 개국으로 팔려나가는 수출 효자 상품이 됐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3억8000만달러(약 4068억원)로 수입액(386만달러)의 99배에 이른다. 수출 대상국 1위는 중국이다. 2015년 3878만달러에서 지난해 1억300만달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사드 영향에도 불구하고 매운맛과 고급화 전략으로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가장 늦게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으면서도 가장 빨리 성장해 원조국에 수출하는 나라가 됐으니 격세지감이다. 어렵던 시절 ‘라보때(‘라면 보통’으로 때움) 정신으로 가난을 극복한 힘이 쫄깃하고 차진 면발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런 사례는 대(對)중국 화장품 수출에서도 확인된다. 중국은 한국 화장품 수입 1위국이다. 지난해 화장품 전체 수출액 49억6800만달러(약 5조3200억원)의 40%를 차지했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옛 궁중 화장비법을 담은 럭셔리 제품이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매출 3조3111억원 중 71%가 이런 고급품이다.

이 회사는 대표 제품인 ‘후’에 ‘공진비단’ ‘경옥비단’ ‘청심비단’ 등 궁중 한방처방을 곁들였다. 상위 5% 소비자를 대상으로 양귀비를 연상케 하는 고급 마케팅을 펼쳤다. 이 덕분에 2016년 158개이던 중국 매장이 지난해 192개로 늘었다. ‘사드 보복’ 속에서 올린 실적이다.

음식과 화장품에는 수천 년의 인류 역사가 녹아 있다. 맛(味)과 아름다움(美)을 향한 욕구는 문명 발달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앞으로 다른 분야에서도 종주국 시장을 휩쓰는 히트 상품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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