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통상(通商)에서도 확산돼야 할 '공정 경제'

입력 2018-02-11 17:58  

보호무역 기조 확인시켜준 美 세이프가드
미국 소비자 및 기업에 역효과 미칠 수도
무역확대 통해 공동번영 이룰 수 있기를

신희택 < 무역위원회 위원장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결정한 한국산 가정용 세탁기, 태양광 전지·모듈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조치가 지난 7일 발효됐다. 지난해 11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자국의 최대 가전업체 월풀과 태양광 패널 관련 업체 신청을 인정해 세이프가드 발동 권고안을 내놓았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ITC 권고안 중 가장 강력한 카드를 뽑아 들었다. 가정용 세탁기 완제품만 하더라도 향후 1년간 120만 대까지는 20% 관세를,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50%라는 어마어마한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일자리 보장을 외치며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메시지를 확인시켜준 것으로 보인다.

세이프가드는 정당한 수입 물품에 관세를 부과하거나 수입 물량을 제한하는 조치라는 점에서 덤핑이나 보조금 등의 불공정한 무역에 대한 반(反)덤핑관세 또는 상계관세 조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공정한 무역에 취해지는 조치인 만큼 국내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경우에만, 그것도 일시적으로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는 긴급한 조치로,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국제통상 규범상 매우 예외적으로만 허용되고 있다.

그만큼 어느 국가든 세이프가드는 조심스럽게 발동하고 있다. WTO가 출범한 1995년부터 2016년까지 세계 각국은 3000건이 넘는 반덤핑 조치를 취한 반면 세이프가드 조치는 150여 건에 그쳤다. 같은 기간 미국 역시 약 400건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반면 세이프가드 조치는 6건에 그쳤는데, 이번에 추가된 2건이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 및 모듈에 대한 것이다. WTO 세이프가드 협정에 의하면 공정한 무역에 대한 조치인 세이프가드를 취할 때는 상대국에 보상받을 기회를 주는데, 자발적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상대국은 관세 인상 등의 보복조치를 취한다. 이 경우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한 국가가 가장 아파할 부분에 보복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결국 세이프가드 조치는 부메랑처럼 돌아와 조치를 취한 국가에도 경제적 피해를 줄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국가 간 무역전쟁을 촉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이 WTO 역사에 남아 있다.

2002년 미국이 철강에 세이프가드 조치를 취했을 때 한국을 비롯 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WTO에 제소해 승소했고, 미국은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우리 정부와 업계는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의 문제점과 부당함을 미국 정부에 적극 제기했다고 한다. 나아가 중국 대만 베트남 등 세탁기 및 태양광 패널 생산국과 공조해 적극 대응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더불어 잘사는 나라로 가기 위한 기반으로 반칙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강조하며 ‘공정경제’를 정부 정책의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다. 우월한 지위를 악용한 ‘갑질문화’를 근절하고 모든 국민이 공정한 기회와 경쟁을 보장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확고히 제시한 것이다. 이런 공정경제 메시지가 국간 간 통상 영역에도 확산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계 최대 시장을 가지고 있는 경제대국인 미국이 가전기업 월풀을 위해 자국 소비자의 후생을 외면하고 취한 이번 세이프가드 조치는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 내에서도 좋은 제품을 적정한 가격에 사고자 하는 미국 소비자 선택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태양광 관련 후방 산업에서 심각한 고용 감소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미국 기업에도 해외의 경쟁 기업들과 공정한 경쟁을 하기보다는 정부의 세이프가드 조치를 통해 외국 경쟁 상품의 시장 진입 자체를 어렵게 하는 전략에 안주하도록 유인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자국의 시장 규모나 우월한 경제력을 이용한 ‘갑질’ 무역정책으로 보일 수 있거나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보호무역적인 무역구제 조치는 자제해야 한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는 국가들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지도자들이 뜻을 모은 공정무역과 무역의 확대를 통한 공동 번영 추구라는 가치를 지켜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htshi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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