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반성 않는 일본'을 이기려면…

입력 2019-02-20 17:55  

'위안부 피해 日王 사과' 놓고 한·일관계 급랭
'과거사 원죄' 일본, 반성커녕 독도 또 자극
'후발' 딛고 일본 이겨낸 기업들에서 배워야

이학영 논설실장



[ 이학영 기자 ] 역사에는 가정(假定)이 없다지만, 문학에서는 가능하다. ‘이랬다면…’ ‘저랬어야 했는데…’를 마음껏 상상의 나래로 펼칠 수 있다. 이문열의 단편소설 ‘장군과 박사’는 한·일 현대사를 현실과 반대로 상상했다. “일본을 아는 이라면 서력 1945년 패전 이후 혼란을 틈타 그 땅을 두 토막 낸 금촌장군과 목자박사를 기억할 것이다”로 시작되는 소설에서 분단된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읽으면서 갖는 느낌은 각자 다르겠지만, 씁쓸함을 긴 여운으로 남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다. 책을 덮고 난 뒤 마주해야 하는 것은 물리칠 수 없는 현실이다. 한반도를 강점하고 2차 세계대전을 도발했다가 항복한 일본은 멀쩡하고, 유린당한 나라가 분단이라는 날벼락을 맞았으니 이렇게 분통 터지는 일이 없다. 한반도가 분단되지 않았다면 이산가족의 비극도, 북한 핵 공포도, 남북한 간 대치와 해빙을 둘러싼 소동도 없었을 것이다.

한일의원연맹 회장을 지낸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일본 군주) 사죄론’을 놓고 한·일 관계가 급속하게 얼어붙고 있다. “한국의 식민 시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왕이 사죄해야 한다”는 발언이 일본 정치인들을 자극한 것이다. 일왕은 패전 이후 ‘인간선언’을 하기 전까지 일본인들에게 ‘아라히토가미(現人神: 인간의 모습을 한 신)’로 떠받들어졌다. 믿거나 말거나, 일본인은 지금도 자신들의 군주를 ‘하늘에서 내려온 황제(天皇·덴노)’로 부른다. 그런 존재에게 사죄를 요구했으니, 말 그대로 역린(逆鱗)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또 불붙은 과거사 논란을 보는 관점은 “언제까지…”에서부터 “이제라도…”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다. 시시비비(是是非非)를 따지는 저마다의 논거도 넘쳐난다. 하지만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일본은 2차 대전 동맹국이었던 독일과 달리 이웃국가들을 침탈하고 전화(戰禍)로 몰아넣었던 데 대한 대가를 제대로 치르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상처를 달래줄 확실한 반성을 한 적도 없다.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양국 정부 합의하에 몇 푼의 배상금을 내놨으니 ‘외교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나 매듭지어진 문제’라고 해서는 곤란하다. 승전국들에 분할점령 당하고는 분단의 징벌을 받아들고, 폴란드 등 이웃국가에 영토까지 떼줬으며, 틈날 때마다 과거의 잘못을 사죄하고 있는 독일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거꾸로다. 19세기 말 한반도 정세가 혼란스러웠을 때 일방적으로 영토선언을 했던 독도를 아직껏 자국령으로 우기며 온갖 외교 도발을 멈추지 않고 있다.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竹島: 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이름)의 날’로 선포하고는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는 일본 땅을 되찾아야 한다”는 결의행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이렇게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나라에 진정한 반성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최근에는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마저 거론하고 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생산에 필수적인 불화수소와 방위산업 관련 물품 수출을 제한하자는 얘기를 흘리고 있다.

막장으로 치닫는 것 같은 한·일 관계를 보면서 이건희 삼성 회장이 설파했던 극일론(克日論)을 떠올리게 된다. S급 젊은 인재들을 일본의 B급 전자업체였던 산요전기에 산업연수생으로 보내 온갖 멸시 속에서 반도체 제조기술을 배워오게 했던 이 회장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 있다. “면적으로 보나 인구로 보나 축적된 국력으로 보나 한국이 국가 대 국가로서 일본을 뛰어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기업으로서 삼성은 어떤 일본 기업도 이길 수 있고, 그래야 한다.”

그의 말대로 삼성은 반도체와 가전, 스마트폰 등에서 일본 기업들을 확실하게 제치고 세계 최정상에 올라섰다. 산요전기는 물론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이 삼성에 밀려 반도체 가전 등의 사업을 포기했다. 일본을 이긴 기업은 삼성만이 아니다. 네이버도 모바일메신저 라인으로 일본을 장악했다. 후발주자로 사업을 시작한 한국 기업들이 이런 성과를 이뤄내기까지 얼마나 외롭고 치열한 시간을 견뎌냈을지는 헤아리기 쉽지 않다. 그렇게 해서 이뤄낸 것들이 우리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준다. 며칠 뒤로 다가온 3·1절 100주년을 앞두고 ‘진정한 역사의 승자가 되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된다.

ha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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