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상대성 원리

입력 2019-06-09 15:26  

여행의 향기

여향 시론

김현환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국장



관광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사석에서도 관광과 관련된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다. 외국을 많이 다닌 친구가 대뜸 “우리나라의 관광자원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었다. 나는 직답 대신 파리에서 만난 소년 이야기를 해줬다. 그 소년은 한국이나 일본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파리에 이렇게 멋진 건물도 많고 좋은데 왜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파리는 돌 건물뿐이잖아요. 성당도 미술관도 지겨워요. 한국은 목조 건물이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10대 소년의 어설픈 반항기가 담겨 있긴 했지만 나름 솔직한 여행 동기였다.

내친김에 경험을 하나 더 소개한다. 도쿄한국문화원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선천적 장애로 휠체어 생활을 해야 하는 일본 여중생이 첫 한국 여행 중에 받은 한국인들의 친절에 대해 쓴 글이 상을 받았다. 친절은 일본이 우리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지라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한국 사람의 친절은 다르다고 했다. 휠체어 소녀를 망설임 없이 다짜고짜 도와주는, 투박하나 한없이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소박하고 따뜻한 친절에 감명받은 그는 이후로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고 지금은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있다.

그렇다. 여행은 상대적이다. 우리는 종종 이솝우화의 시골 쥐처럼 도시 여행을 해보고 나서야 일상의 행복을 재발견한다. 지난 4월에 개최된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한 외국인의 발언이 인상적이었다.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에 살고 있는 그는 “한옥은 자유의 미, 자연의 미, 절제의 미, 여백의 미를 다 경험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해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한국인을 놀라게 했다. 그의 한국 어휘력도 놀라웠지만 한국 문화의 매력을 우리보다도 더 잘 체감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마저 느껴졌다. 우리는 은연중에 한국의 문화적 가치, 일상생활에 배어 있는 조상의 지혜와 미학을 과소평가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오래전 여행업계 원로 한 분이 “세계 곳곳을 다녀봤지만 우리나라 제주도가 최고”라고 말씀하시던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의 표정은 동화 파랑새의 마지막 결말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에 제주도에 올레길이 생기고,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 관광객에게까지 인기가 치솟는 것을 보고 그분의 말씀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얼마 전 남도의 한 도시를 찾았다. 이팝나무가 눈꽃처럼 하얗게 피어 있는 길을 여유롭게 걸으며, 그리고 인근 식당에서 가족들과 정갈한 한정식을 남김없이 먹으면서, 이게 제일 행복한 여행이지 싶었다. 굳이 해외로 나가보겠다고 번잡하게 짐 꾸리고, 숙제하듯이 일정을 빡빡하게 짜서 다리 아파도 돈 아까워서 이를 악물고 돌아다니고 귀국하면 피곤해서 일상에까지 영향이 미치는 그런 여행 말고도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손쉬운 국내 여행은 얼마든지 있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올 휴가 여행은 여름 성수기를 피해서 조금 일찍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곳으로 국내로 떠나보면 어떨까. 국내에 갈 만한 곳? 정보는 많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여론조사를 통해 선정한 ‘한국관광 100선’ 중에서 아직 안 가본 곳을 체크해 보면 어떨까.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에는 ‘이달의 가볼 만한 곳’ ‘숨은 관광지’ 정보도 있다. 각 언론사 기자들이 매주 전국을 고생스럽게 누비고 다니면서 쓰는 관광지 소개 기사에도 알짜 정보는 많이 있다. 올여름에는 프랑스 소년이 꿈꾸는 한국 여행지에서 일본 소녀가 감동받은 한국인의 투박한 친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한국 고건축의 미학을 여유롭게 즐기는 여행 고수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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