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나랏돈을 '복지'에만 쓰다가 시민안전 소홀하면 안 되죠~

입력 2019-06-24 09:01  





[ 허원순 기자 ]
[사설] '붉은 수돗물' 방치한 채 현금 살포하는 지자체들, 정상 아니다

인천 지역 1만여 가구와 150개 학교를 불안하게 만든 ‘붉은 수돗물’ 사태의 파장이 심각하다. 인천광역시의 늑장행정과 뒷북대책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게 근본 문제는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의 편향되고 준비성 없는 예산 운용 실태, 좀체 바뀌지 않는 노후 인프라에 대한 국가 차원의 안전관리 미비 같은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드러난 것이다.

인천의 붉은 수돗물은 예견된 사고라고 봐야 한다. 서울에서도 기본 내구연한인 30년을 넘은 상수도관이 31.5%(2017년)에 달하는 게 현실이다. 수시로 수도관이 터지고 녹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인천에 가려졌지만, 같은 시기 전북 익산시 수도에서도 녹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인천시도, 익산시도 낡은 관 교체를 위한 시 예산은 한푼도 없다. 수도요금은 꼬박꼬박 징수하면서도 아파트 관리비를 낼 때 함께 적립하는 수선충당금 같은 비용은 모두가 외면해왔다.

붉은 수돗물은 전국 지자체 어디에서나 닥칠 수 있는 ‘일상의 위험’이다. 하지만 광역은 광역대로, 기초는 기초대로 지자체들은 당장 빛나지 않고 선거에도 도움되지 않는 노후시설의 유지보수나 안전 관리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지속가능성이 의심되는 온갖 무상지원 프로그램이나 현금살포 방식의 포퓰리즘 복지에 경쟁적으로 나설 뿐이다.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지방행정에까지 얄팍한 표 계산이 앞서는 ‘과잉 정치’는 어제오늘의 폐단도 아니다. 이번에는 상수도가 도마에 올랐지만, 장마철이면 되풀이되는 물난리에서 보듯이 부실하기는 하수도도 마찬가지다.

상하수도 업무를 맡고 있는 지자체들이 행정의 기본을 다지는 게 중요하지만, 중앙정부도 실현성이 의심되는 예산 배정 정도로 끝낼 일이 아니다. 정부가 어제 부랴부랴 내놓은 ‘기반시설 안전강화 종합대책’만 해도 2020년부터 해마다 8조원씩 4년간 투입한다는 계획이지만, 매년 조 단위의 민간투자가 정부 바람대로 병행될지는 미지수다. 지자체 따로, 공기업 따로, 중앙정부 따로인 각종 인프라에 대한 안전관리의 주체나 책임 문제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총체적 책임은 당연히 정부가 져야 한다.

미세먼지에 이어 수돗물까지, ‘일상이 안전한 대한민국’은 요원하기만 하다. 재정지원과 자치권 확대만 요구해온 지자체들의 자치역량도 거듭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경제신문 6월 19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국가 안전 총책임은 정부에 있어
지자체의 포퓰리즘적 재정 낭비
정부와 국회가 견제로 막아야

현대 민주국가에서는 공공부문이 굉장히 다원화돼 있다. 행정이나 공권력도 그만큼 복합적, 복층적이다. 가령 수돗물은 지방자치단체가 담당하고, 전력에 관한 문제는 한국전력 등 에너지 공기업이 일차 책임을 진다. KTX 등 철도는 코레일이라는 공기업이 운영을 맡고, 선로와 교량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관리한다. 코레일이나 철도시설공단이 중앙정부 관할하에 있는 국가 공기업 또는 준정부기관인 반면 서울과 부산 등지의 지하철은 지방 공기업이어서 광역 지자체인 서울시, 부산시가 담당한다. 그래도 행정안전부에는 공기업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와 법률이 있어 지방 공기업에 관한 정책도 편다. 국가 공기업에 대한 총체적인 관리 책임이 기획재정부에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렇다 보니 인천의 녹물 수도는 인천시가 먼저 책임져야 하고, 2018년 경기 고양시에서 발생한 고열 송수관 파열사고는 국가 공기업인 지역난방공사가 일차적으로 책임을 지는 게 맞다. 반면 2018년 말 서울 아현동에서 발생한 KT 통신구 화재사고는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켰지만 기본적으로 민영화된 기업(민간기업)의 관리 잘못으로 인한 사고였다.

하지만 안전에 관한 한 총체적인 책임은 중앙정부에 있다고 봐야 한다. 각종 법령 법규를 가지고 있고, 막대한 예산의 편성 집행권이 있는 데다, 부·처·청별로 잘 조직된 행정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정부다. 설사 시·도와, 시·군·구에서 상하수도 등에 대한 관리행정권이 있다 해도 이에 대한 감시 감독 수단과 책무가 중앙정부에 있다. 감사권, 예산 지원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지자체가 당장 유권자들에게 달콤하게 다가갈 ‘현금성 복지’ 프로그램에 매달린다 해도 중앙정부는 ‘협의권’ 등을 발동할 수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는 그런 건전한 견제권한은 거의 행사하지 않은 채 ‘연방제 수준의 자치권을 주겠다’며 지방권한 확대에 비중을 둬왔다. 그 결과 늑장 처리, 뒷북 대응 같은 무능한 행정이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인천시 녹물 수도 사태에서 감사를 벌인 환경부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100% 인재(人災)’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차제에 범정부 차원의 낡은 사회간접자본(SOC) 인프라 안전 점검 및 강화책이 추진될 필요가 있다. 한국 사회는 1970~1980년대부터 급성장하며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인프라를 건설해왔다. 거대한 신도시를 잇달아 세웠고, 도로 공항 항만 댐 상하수도 통신망 에너지공급망 등을 급하게 구축해왔다. 30년씩 지나면서 안전설계 수명이 다한 부문도 적지 않고, 보수가 시급한 쪽도 많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대형 사고를 막는 것이 철저한 예방책이다. 안전한 사회로 가는 데는 비용이 수반된다는 인식이 필요하지만 예산만 배정한다고 다 되는 일도 아니다. 정부와 국회, 지자체도 안전을 시민의 기본권으로 제대로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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