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관문 못 넘는 신약…흔들리는 K바이오

입력 2019-06-28 17:42   수정 2019-06-29 00:50

글로벌 임상 3상서 잇단 고배

인보사 사태로 불신 커졌는데
'리보세라닙 再임상' 까지 덮쳐
3상 보유 바이오株 연일 급락



[ 전예진 기자 ]
국내 바이오 기업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코오롱생명과학의 ‘인보사’ 사태가 터진 지 석 달 만에 에이치엘비의 항암제 ‘리보세라닙’이 글로벌 임상 3상의 고비를 넘지 못해서다. 국내 기업들이 신약 출시의 마지막 관문에서 번번이 좌절하면서 시장의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에이치엘비는 28일 리보세라닙의 위암 글로벌 임상 3상을 추가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신청하긴 어렵지만 일부 유의미한 데이터가 나온 만큼 새로운 임상으로 돌파구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진양곤 에이치엘비 회장은 “소규모 임상을 통해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 허가받을 예정”이라며 “약물이 효과를 전혀 보이지 않아 임상을 중단한 것이 아니므로 실패가 아니라 임상 지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FDA 허가가 무산됐다는 점에서 시장은 ‘임상 실패’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업계는 인보사 사태 이후 K바이오에 대한 시장 불신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헬릭스미스, 신라젠, 메지온 등 올 하반기 임상 3상 결과 발표를 앞둔 바이오 기업도 안심할 수 없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대표 바이오 기업들이 휘청이면서 업계 전체가 위기를 느끼고 있다”며 “임상 3상과 미국 진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투자심리를 부추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임상 3상 단계의 신약 후보물질을 보유한 바이오주들이 급락했다. 에이치엘비는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가격제한폭(29.9%)까지 떨어졌다. 메지온(-23.9%) 헬릭스미스(-11.0%) 신라젠(-5.5%) 등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들 4개 바이오기업의 시가총액은 이날 하루 2조9804억원 증발했다.


'데스밸리'보다 혹독한 3상 관문…K바이오, 통과 낙관하다 '쓴잔'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임상 마지막 단계인 3상을 통과하는 확률은 평균적으로 63.7%다. 성공 확률이 더 높다. 항암제 분야로 범위를 좁히면 얘기가 달라진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FDA에서 임상을 진행한 자료를 분석해보면 항암제 임상 3상의 성공 가능성은 40.1%로 줄어든다. 그럼에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은 실패 위험을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상 3상 성공의 대한 막연한 기대와 환상이 제약바이오업계에 불신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루 만에 뒤바뀐 결과로 혼란 가중

에이치엘비가 바이오업계에 파문을 불러일으킨 배경도 성공을 지나치게 낙관했다는 데 있다. 에이치엘비는 지난 26일 리보세라닙의 임상 결과가 긍정적이라고 밝힌 다음날인 27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FDA 허가가 어렵다고 발표했다. 회사 측이 하루 만에 말을 바꾸면서 시장 혼란을 가중시켰다. 그동안 임상 성공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는 점도 투자자의 실망을 키웠다.

에이치엘비는 리보세라닙의 중국 임상 결과가 뛰어나고 현지에서 환자들에게 처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왔다. 최근에는 미국 진출을 위해 리보세라닙의 원 개발사인 미국 자회사 LSK바이오파마(LSKB)를 합병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종 분석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임상시험의 객관성을 위해 신약 개발사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한 FDA 가이드라인 때문이다. 글로벌 임상에 참여한 환자 데이터는 임상을 진행하는 의료진 등 소수만이 열람할 수 있다. 분석이 끝나기 전에는 아무도 성공과 실패를 예측하기 어렵다. 일부 환자에게서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도 통계적 유의성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최종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항암제의 경우 환자가 치료부터 사망에 이르는 기간인 전체 생존기간(OS)과 암이 진행되지 않고 생존한 무진행 생존기간(PFS) 등 다양한 평가지표가 있다. 리보세라닙은 1차 유효성 평가지표인 OS 수치가 경쟁 약물과 위약 대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차 지표인 PFS는 유의미한 수치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제약사들은 최종 분석 결과를 학회에 공개하기 전 임상 데이터를 기밀에 부치고 엄격히 관리한다”며 “국내 바이오 회사 중 처음으로 FDA 신약 허가를 추진하는 사례여서 주목받다 보니 성급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대형 제약사도 3상서 포기 잦아

현재 국내 13개 제약바이오기업이 20여 개 파이프라인(후보물질)의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 중이거나 완료했다. 임상 3상은 실제 환자를 대상으로 약물의 효능을 평가하는 마지막 임상이다. 1, 2상에 비해 성공 확률이 높고 시판 허가를 신청하기 전 단계여서 기대가 최고조에 이르는 시기다. 동물을 대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을 실험하는 전임상에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1상은 실패 확률이 가장 높아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라고 불린다. 임상 1상은 성공 확률이 30%에 불과하지만 2상에 진입하면 67%, 3상에 이르면 73%까지 높아진다. 하지만 3상도 데스밸리만큼이나 통과하기 혹독한 관문으로 평가된다. 대규모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해야 하기 때문에 수천억원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3상에서 실패할 경우 제약바이오 회사의 경제적 손실이 크다. 소위 ‘빅파마’로 불리는 글로벌 대형 제약사도 막대한 임상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임상 3상 포기를 선언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금까지 자체 개발한 신약으로 글로벌 3상을 직접 수행한 국내 회사는 SK바이오팜과 셀트리온 두 곳뿐이다. 최근에는 바이오 기업에 투자금이 몰리면서 해외에서 직접 임상을 추진하는 사례가 늘었다. 에이치엘비를 비롯해 헬릭스미스, 신라젠, 메지온 등이 임상 3상을 하반기 마무리한다. 제약업계는 앞으로 실패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보세라닙의 선례를 바탕으로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임상 3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정태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전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임상 3상에 돌입했다고 하면 성공이라도 한 것처럼 축배를 드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글로벌 제약사도 부지기수로 나가떨어지는 단계가 임상 3상”이라며 “투자 유치를 위해 임상 결과를 부풀리기보다는 글로벌 임상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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