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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제조업체, 젊은 세대 '공장일 기피'에 고심 2019-02-25 11:09:35
3분의 1밖에 채용하지 못했다. 재단사를 구하던 광둥성의 한 의류 제조업체는 7천 위안(약 118만원)의 월급에 무료 기숙사까지 제시지만, 이 회사도 아직 충분한 인력을 구하지 못했다. 저장성의 한 가구 제조업체 대표는 "숙련공에게 지난해보다 10%나 오른 임금인 5천 위안(약 84만원)의 월급을 제시했지만, 이들은 8천...
50대 선수출신 사장·70대 봉제장인·20대 디자이너, 국가대표가 찾는 유니폼 만들다 2019-02-18 14:52:50
있다”고 했다. 애플라인드는 숙련된 전문가와 기술인을 존중하는 의미로 호칭도 정했다. 재단사는 cd(cutting designer), 재봉사는 sd(sewing designer), 샘플사는 sc(sample coordinator) 등으로 부른다.두 번째 협업은 전국 봉제 공장들과 하고 있다. 애플라인드는 30여 개가 넘는 아이템별로 서울 화곡동과 면목동...
'청바지 대명사' 리바이스, 뉴욕증시 재상장한다 2019-02-14 06:09:21
건자재·의류 도매업에 종사하다가, 단골손님이었던 재단사 제이콥 데이비스와 함께 청바지 제품을 개발했고 1873년 특허를 취득했다. 리바이스의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청바지 제국'으로 도약했다. 지난 1971년 뉴욕증시에 상장했지만, 실적 악화 끝에 1985년 비상장 업체로 전환한 바 있다. 빠르게...
25년의 기록…인천시 잡지 '굿모닝 인천' 300호 발간 2018-12-11 09:37:14
경력의 재단사, 필름 카메라 사진관을 운영하는 30대 청년, 100년 한옥 고택에서 서점을 낸 부부 등 올해 매월 커버스토리를 장식한 인물들만 봐도 굿모닝 인천의 지향점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원도심의 골목, 잊혀진 부둣가의 작은 포구 등 한때 인천 사람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지만 산업화...
[율곡로 칼럼] 김명환, 문성현의 손을 계속 뿌리칠 텐가 2018-11-24 09:00:02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대학생 친구가 하나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학생들이 노동현장으로 향했다. 학생운동가들의 노동운동 투신은 8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문성현도 있다. 훗날 민노총 금속연맹 위원장이 됐고, 지금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SNS★패션] 20대보다 트렌디한 ‘시니어 패피’ 2018-11-15 11:02:00
성공한 재단사였다는 그는 기성복의 흐름이 변화하면서 본업을 접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패션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젊음의 거리로 나가 젊은이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트렌디한 감각을 익히며 약 25년 만에 패션계로 돌아왔다. 복귀는 대성공적이었다.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지만 그는 멋스러운...
찰스 왕세자 수선한 옷 즐겨입어…"양복 대부분 30년이상 된 것" 2018-11-13 16:12:51
찰스 왕세자가 한번 맞춘 양복을 30년 이상 입고 있으며 재단사는 항상 양복의 수선에 대비해 해당 의복의 천 조각을 수십 년 이상 보관해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왕세자 정도의 VIP라면 주요 행사 때마다 새로운 '수트'를 맞춰 입고 나올 것 같지만 찰스 왕세자의 경우 착용하고 있는 양복과 신발 등이 30년 ...
4K 화질로 찾아온 '우묵배미의 사랑'…"기적 같은 일" 2018-10-29 23:16:48
원작 소설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치마공장에서 재단사로 일하는 '일도'와 미싱사 '공례'의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가난에 찌든 삶을 살아가던 일도와 공례는 유부남·유부녀지만 서로 끌리고 결국 비닐하우스에서 밀회를 나누게 된다. 그러나 동네 사람들에게 관계가 들통나자 두 사람은 우묵배미를...
[다산 칼럼] 노동조합은 더 이상 약자가 아니다 2018-10-28 17:32:33
영세 의류제조회사 재단사이던 스물두 살 청년이 분신자살을 한다. 이름은 전태일.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해 달라는 간절한 요구가 무시당하자 분신 항거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구로동의 ‘벌집’에는 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스물도 안 된 나이에 고향을 등진 어린 처녀들이 밤마다 눈물을 훔치고,...
[율곡로 칼럼] 전태일 정신을 가슴에 품을 때 2018-10-18 09:00:11
소녀들로, 미싱사와 재단사의 보조업무를 하면서 온갖 잡일을 도맡았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전태일 열사가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이유는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인은 평생 참혹한 가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고귀한 희생정신과 약자들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