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집값은 과연 누가 올렸는가

입력 2019-11-27 18:17   수정 2019-11-28 09:32

디벨로퍼 K사가 수도권 남부에 땅을 산 건 2017년 말이다. 인허가, 설계 등을 마치고 지난해 9월 시공사 선정을 추진하던 K사 대표는 1군 건설사들이 제시한 도급 공사금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3.3㎡당 450만원이면 충분하다던 아파트 공사비가 몇 달 만에 550만원으로 뛰어서다.

그해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로제’가 주된 원인이었다. 건설사들은 현장 근로자의 근무시간이 단축돼 공기(工期)를 연장하거나 인력을 더 투입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공사 단가를 올렸다. 실제 아파트 1개 층을 올리는 데 4~5일 정도였던 공기는 이틀 더 늘어났다. K사 대표는 “어쩔 수 없이 공사비를 올려주다 보니 분양가를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3.3㎡당 100만원 더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K사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까지 적용받게 된 디벨로퍼들은 진퇴양난의 처지다. 공사 원가가 올랐는데도 분양가에 이를 반영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신영 컨소시엄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옛 MBC 부지에 짓기로 한 ‘브라이튼 여의도’(454가구)는 연내 계획했던 분양 일정을 기약 없이 늦췄다.

분양가 상한제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건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이다. 현재의 분양가 산정 방식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조합들은 잇따라 사업 추진 의사를 접고 있다. 가용토지가 없는 서울에서 유일한 공급 수단인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사실상 ‘개점휴업’에 접어들면서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고 있다.

신규 공급이 막힐 것이란 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신축 아파트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두어 달 새 2억~3억원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 저 멀리 달아난 신축 아파트를 놓치고 더 늦기 전에 구축 아파트라도 잡으려는 매수 대기자들로 서울 곳곳의 중개업소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요즘 서울 집값이 치솟고 있는 건 이런 구조적이고 복합적인 요인이 깔려 있다. 여기에는 출퇴근이 편리한 서울, 그리고 낡은 주거환경을 대체할 수 있는 신축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 깔려 있다. 투기 수요도 서울 집값을 올리는 데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줄기차게 투기 세력이 집값 상승의 주범이라는 정부의 단선적인 인식엔 동의하기 어렵다.

30대 젊은 층이 서울 아파트 구매의 ‘큰손’으로 등장한 현실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30대의 서울 아파트 매입 비중은 31.2%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이들은 서울의 신규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고 양도세 중과로 기존 아파트 매물마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투기꾼들보다 늦게 깨달은 실수요자이기도 하다.

대출이 막히고 청약가점에서 밀리는 30대들은 당첨 확률이 낮은 상한제 대상 아파트를 포기하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존 아파트 매입에 뛰어들고 있다. 그나마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은 구축이 이들에겐 올라탈 수 있는 ‘막차’이자 마지막 ‘탈출구’다.

이런 상황에선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같은 외부 충격이 닥치지 않는 한 집값 상승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불패 신화’의 맹신은 갈수록 단단해지고 있다. ‘미친 집값’이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은 부동산 광풍의 시대다. 집값은 누가 올린 것일까.

leewa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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