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of the week] '이념적 담합'을 막는 反독점이어야 한다

입력 2020-08-13 15:17   수정 2020-08-13 15:19


미국 하원 법사위 반독점소위원회는 지난달 29일 애플과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청문회에 세웠다. 의원들은 이들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갑질’을 하고 있다며 집중 추궁했다. 데이비드 시실린 반독점소위 위원장은 “1세기 전에 만들어진 반독점법이 디지털 시대에도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의 힘이 점점 커진다는 점에는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문제의 본질은 미 의회가 ‘독점 금지’라는 프레임에 갇혀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반독점법은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하고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부과하는 독점 및 카르텔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다.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등과 같은 재벌에게 제동을 걸기 위한 일종의 규제 장치였다. 하지만 오늘날 대기업의 문제는 법 제정 당시와 다르다.

애플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등은 소비자에게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매우 낮은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페이스북의 소셜네트워크와 구글의 검색 엔진은 무료다. 소비자들은 아마존에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고, 애플의 아이튠즈 스토어에서 풍성한 음악을 즐긴다.

문제는 가격 담합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담합이다. 대기업은 소비자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접할 기회를 제한한다. 이는 카네기 가문의 US스틸이나 록펠러 가문의 스탠더드오일보다 사람들에게 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알파벳 자회사인 유튜브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이유를 앞세워 거짓 정보가 담긴 정치 관련 영상을 삭제하겠다고 밝혔다. 유튜브는 미국 내 코로나19 봉쇄 정책에 비판적인 내용을 담은 동영상을 삭제했다. 하지만 이것은 과학 및 공공정책 토론에 대한 담론의 억압이다. 유튜브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기준에 따라 거짓 영상을 가려낸다고 한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지난 1월 코로나19가 사람 간에 전파될 수 있다고 주장한 영상도 삭제해야 했다. 그때만 해도 WHO는 코로나19가 사람 간에 전파되지 않는다고 봤다.

페이스북이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를 신설해 정치 연설 콘텐츠를 검열하기로 한 것도 마찬가지로 잘못된 일이다. 지난 3월만 해도 외과 전문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중보건 전문가는 코로나19 예방과 관련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라고 해서 늘 진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인식할 때 늘 겸손해야 한다. 지금 진실이라고 굳게 믿는 일들이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날 수 있다. 자유로운 논쟁이 없다면 과학과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이는 빅테크 기업에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CEO는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적어도 한 명의 다양성을 가진 이사회 후보가 없는 기업의 상장은 돕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9세기 미국 흑인 노예제도 폐지 운동을 이끌던 프레데릭 더글러스를 비롯해 20세기 많은 흑인 지도자들이 할당제를 반대했다. 하지만 오늘날 골드만삭스는 할당제를 선호한다. 이런 문제는 자유로운 공개 토론으로 해소하는 게 전통적 방식이었다. 솔로몬처럼 기업 꼭대기에 있는 임원이 독단적으로 이런 문제를 결정짓지 않았다는 얘기다.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만큼이나 대기업들이 논쟁의 경계를 정하는 현상을 걱정해야 한다. 빅테크업계와 월스트리트는 기후 변화부터 치안 유지, 다양성 등의 이슈에 대해 진보적인 성향을 나타내지만 이 또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기업에 중국에 불리한 언급이나 연설을 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해왔다. 미국프로농구(NBA), 디즈니, 메리어트 등이 중국의 압력에 굴복했다. 애플과 구글, 트위터 등은 중국 공산당과의 이런 협업을 추진해왔다. 트위터는 톈안먼 민주화운동 30주년을 앞두고 중국 활동가들의 계정을 정지시켰다. 애플은 톈안먼 광장을 암시하는 노래를 아이튠즈에서 없앴고, 홍콩과 마카오에서 쓰이는 이모티콘에서 대만 국기를 삭제했다. 이런 압박을 미국 사용자에게도 적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사회·정치적 가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고 있다. 미국엔 사회 각 영역을 분리하면서도 온전함을 유지해온 오랜 전통이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분리하는 것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다. 미국의 기업 지도자들은 시장 권력을 이용해 사회·문화·정치적 권력을 부당하게 행사함으로써 이 기본 원칙을 어기고 있다. 사람들에게 근본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는 이 이념적 카르텔에 저항해야 할 때다.

원제=Antitrust Can’t Bust a Monopoly of Ideas
정리=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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