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사설 깊이 읽기] 근로시간 단축 따른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해선 안 되죠~

입력 2019-05-20 09:02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사설] 납세자는 '화수분'이 아니다

전국 주요 도시의 버스 파업도 결국 세금 투입 위주의 미봉적 해결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그제 대구에 이어, 어제 다른 도시들보다 먼저 파업사태를 피한 인천은 ‘재정 지원으로 3년간 임금 20% 이상 인상, 정년 63세로 2년 연장’이 타결안이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 시(市) 예산을 과도하게 퍼부었다가 ‘부실 지자체’로 몇 년간이나 행정안전부의 재정 감독을 받았던 터에 새로운 혹을 붙였다. ‘준공영제’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 연간 추가비용은 1조3433억원에 달한다는 추계가 나와 있는 터다.

버스 파업 대란은 막아야 하겠지만, 그 방법이 세금 투입이어선 곤란하다. 무엇보다도 버스 운영의 당사자 부담 원칙이 무시되고 있다. 공공사업의 기본인 수익자부담 원칙에서도 벗어났다. 주 52시간 근로제든 무엇이든 비용이 발생하면 이용자가 먼저 부담하고, 개별 버스회사가 감내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고통 분담과 구조조정도 필요하다. 기사들 근로시간이 줄어든다면 그에 따른 임금 감소도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것 아닌가.

버스업계 노사가 있고, 쟁의가 진행 중인 사안에 정부 여당이 유일한 해법인 양 준공영제를 서둘러 제기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 특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그제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를 앞서 발표해 ‘국고지원은 곤란하다’는 정책적 판단을 해온 기획재정부의 입을 막아버렸다. 조(兆)단위 보조금은 국민들 지갑에서 나오는데, 섣부른 판단도 생색내기도 국회와 정당이 먼저 하고 있다.

시내버스 업무는 지방자치단체 소관이다. 하지만 어느 시·도도 버스 지원을 위한 지방재정 구조조정에 선뜻 나서지 않을 것이다. 여당이 앞서 해법까지 제시한 판에 급하게 근로시간 단축을 몰아붙여 온 중앙정부더러 해결하라고 할 게 뻔하다. 중앙과 지방의 이런 소모적 입씨름은 ‘낭비 행정’일 뿐이다. 지자체 파산제도가 없는 한국에서는 국세로 나가든, 지방세에서 지원되든 납세자 부담은 같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요금 문제는 경시하거나 회피한 채 재정지원으로 파업사태를 푼다 해도 과연 시내버스에서 끝날까. 승차공유를 놓고 택시업계 반발이 거세자 기사월급제에 정부 지원론이 나온 판에 열악한 화물자동차나 관광버스 등 다른 운수업계는 가만히 있을까. 주는 쪽이나 받겠다는 쪽이나 너무도 쉽게 ‘국고 지원’을 말한다. 큰 정부와 공공부문 확대로 거침없이 달려 온 정부가 그런 길을 열어놨다. 하지만 효율성이 없고, 지속가능한 모델도 아니다. 지난 1분기에만 전년 대비 8000억원 줄어드는 등 세수는 이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끝없는 재정 퍼붓기로 미래세대에 빚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내 집권기 몇 년간 굴러가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전국 버스들은 이번 파업을 준비하며 ‘보편적 교통복지’라는 구호와 함께 ‘중앙정부가 책임져라’라는 주장을 외쳤다. 심각한 재정의존증, 곳곳으로 번지는 이 복지병을 누가 자극했는가. 납세자는 화수분이 아니다. <한국경제신문 5월 15일자>

사설 읽기 포인트
무리한 정책으로 비용 발생할 때마다
정부가 매번 국고로 해결하려 들면
미래세대 부담 늘고 새로운 문제 생겨

전국적인 대중교통 대란(大亂) 직전에 가까스로, 억지로 봉합은 됐지만 버스파업 위기는 많은 숙제를 남겼다.

이상과 이론만 좇은 정부의 안일한 정책이 시민의 발이라는 버스교통을 마비 직전까지 몰고 갔다. 불특정 다수를 향한 정책의 파급은 그만큼 큰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광역 시·도)가 유기적인 협력 체제를 유지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빚어진다는 것도 보여줬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며 칭찬만 했을 뿐, 그에 대한 대가와 ‘민주주의에서의 비용 분담’ 문제는 소홀히해 온 게 새삼 드러났다. 버스운송업이라는, 기본적으로는 민간의 비즈니스를 어느 선까지 자율 영역으로 둘 것인가도 사회적 고민거리다. 그 연장선상에서 준공영제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논쟁거리도 던졌다.

더 큰 본질적 과제는 비용 부담의 원칙, 당사자 부담의 원칙을 어떤 식으로 견지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도시의 시내버스는 기본적으로 이용자, 즉 수익자가 있다.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면 이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이용자에게 단순 전가가 어렵다면 버스업계라는 운영주체가 이를 담당해야 한다. 버스업계에는 회사와 기사라는 노사가 있고, 공공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준공영제라면 지방자치단체라는 또 하나의 주체가 있다. 정부라 해서 모든 영역에 마구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버스 노조 측에서는 처음부터 “중앙 정부가 책임져라”며 끌어들였다. 물론 초기 단계부터 세금 동원을 전제하며 개입한 국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도 문제는 있다. 앞으로 파업을 내세우고 떼법처럼 ‘실력 행사’에 나서면 정부 지원이 따를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던지는 나쁜 선례로 남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인구절벽이라며 국가적 차원의 재앙적 상황을 걱정하면서 미래세대에게 자꾸만 부담을 지우는 것도 무시 못할 문제다. 사회적 부담이 늘어나는데 미래 세대가 출산은커녕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려 하겠나. 더구나 미래는 지금보다 더 수월하게 국적을 선택하고, 주거지역을 골라 생활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곳곳에서 갈등거리가 속속 이어진다. 가장 손쉬운 방식이자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세금 지출에 의존하는 해법을 택하면 결과는 어떻게 되나. 공공의 기능을 키워나가는 것은 사회적 갈등 해결의 능력을 도태시킨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다락같이 올린 최저임금에 이어 주 52시간 근로제에서도 결국은 ‘비용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언제나 ‘이상’은 그럴 듯하지만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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