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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나경원에 "내 아버지를 당신 입에 올리는 일 삼가라" 2019-03-16 19:41:05
의원은 "아버지는 고작 1년 남짓 몸담았던 남로당 경력으로 평생 빨갱이 소리를 들으며 사셨다"며 "자신의 독립운동 경력은 무시되고 폄하된 채 자신이 청춘을 바쳐 지키려던 조국으로부터 온갖 불이익을 당하며 억울한 생을 사신 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나경원 의원에게 경고한다"며 "무슨 전략인지 또는 열등감인...
"국민 10명 중 4명 '제주4·3' 잘 몰라…11%는 왜곡된 인식" 2019-03-13 09:52:48
남로당 지시에 따른 폭동' 4.1% 등 11.6%가 왜곡된 인식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48%는 '국가폭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17.9%는 '미군정과 경찰의 탄압에 대한 저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4·3의 과제에 대해서는 '국민과 공유하는 전국화'라는 응답이 36.4%로 가장 많았다. 이어 4·3의...
[3ㆍ1운동.임정 百주년](34)사회주의 전력탓 유공자 탈락 김장환 2019-02-25 06:00:36
역시 광복 이후 발발한 제주 4·3 사건 당시 남로당에 입당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는데, 광복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심사에서 탈락했으나 99년 만에 뒤늦게 오명을 털어내고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독립운동에 헌신했음에도 후손들에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
[3ㆍ1운동.임정 百주년](29) 8촌 형제 8명이 독립유공자 2019-02-18 06:00:29
김시범 선생은 광복 이후 발발한 제주 4·3 사건 당시 남로당에 입당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는데, '해방 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심사에서 탈락했다. 그는 제주에서의 3·1 만세운동 후 99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김시범 선생의 8촌...
올해도 제주4·3 동백꽃 배지 물결이…추모 행사 다양 2019-02-04 10:00:12
진행 등을 통해 추념식 분위기를 조성한다. 정부의 제주4·3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4·3은 1947년 3월 1일 3·1절 제주 기념대회가 열린 관덕정에서 경찰의 발포사건을 시작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봉기를 거쳐 1954년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여에 걸쳐 2만5천∼3만 명가량의 도민이 희생된...
[ 분야별 송고기사 LIST ]-정치 2019-01-29 15:00:01
5개년 계획·예타 면제 사업 확정(종합) 190129-0780 정치-007214:56 이완구 전 총리 정치활동 재개…"충청대망론 현재 살아 있어" 190129-0784 정치-007314:59 보훈처 "손용우 선생 남로당 활동說 등 모든 행적 심사해 포상" -------------------------------------------------------------------- (끝) <저작권자(c)...
보훈처 "손용우 선생 남로당 활동說 등 모든 행적 심사해 포상" 2019-01-29 14:59:24
때 남로당 활동 이력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국내 한 언론의 지적에 대한 해명자료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당시 공적심사위원회에선 독립운동 공적은 물론 광복 후 남로당 활동설을 포함한 모든 행적을 심사해 (손 선생을) 포상자로 의결했다"고 설명했다. 1940년 서울에서 일제의 패전을 선전하다 체포돼 옥고를 치른 손...
제주4·3특별법 제정 20년, 개정안 통과 '재원 조달'이 관건 2019-01-14 15:16:59
3일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가 전면 해제될 때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했다. 기존 법의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6·25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 99세 생일…한미 軍수뇌 축하 2018-11-21 16:22:56
남로당 숙청 분위기 속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구명에 적극 나섰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으며 장관 재직 시절 서울 지하철 1호선 건설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일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탓에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해방 이후 법률가, 반성하지 않아야 영광 누렸다" 2018-11-20 16:26:37
서울지검 차장검사로 복귀한 뒤에는 남로당에 가입했다. 제1차 법조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그는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월북했다가 행방불명이 됐다. 반면 친일 가문 출신인 민복기는 김영재처럼 경성제대에서 공부해 판사가 됐고, 해방 이후에도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통령 법률비서관을 지냈다. 한국전쟁 당시 성북동에 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