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0] '로레알 혁신'이 보여준 세 가지 메시지

입력 2020-01-08 17:43   수정 2020-01-09 09:02

7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이 열리고 있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시장 인근 벨네시안타워. 글로벌 뷰티그룹 로레알은 이 건물 34층 209호에 공간을 마련했다. 넓지 않은 공간에는 로레알이 보유한 화려한 브랜드의 제품은 없었다. 대신 네모난 통 몇 개와 화장품 재료, 스마트폰이 전부였다. ‘로레알답지 않은 전시’란 생각이 들었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달랐다. “CES 2020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라고 했다.

정보기술(IT)과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사업의 경계가 붕괴되고, 전통 제조업이 스스로 업의 본질을 바꿔나가는 것을 보여주는 ‘작지만 메시지가 많은 전시’라고 평가했다. CES 2020에서 현대자동차가 자동차를 한 대도 전시하지 않고, 소니가 전기차를 내놓은 것과 맥을 같이한다는 분석이었다.

로레알은 이 제품에 페르소(사진)란 이름을 붙였다. ‘개인이 직접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제조할 수 있는 기기’란 의미를 담았다. 아침에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을 열어 얼굴을 스캔하면 끝난다.

AI가 피부상태, 대기질, 공해, 트렌드 등을 분석해 최적화된 스킨로션을 제조해준다. 하루치 분량을 캡슐 형태로 포장까지 해준다. 같은 방식으로 파운데이션, 립스틱 등도 제조할 수 있다.

글로벌 스타트업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이용덕 전 엔비디아코리아 대표는 전시장을 돌아본 뒤 이렇게 말했다. “전통 화장품기업이 서비스업으로 건너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업(業)을 넘나드는 이런 시도는 이번 전시회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이기도 하다.”

‘페르소’가 성공하면 화장품 콘셉트를 정하고 원료를 사서 만든 뒤 이를 매장에서 판매하는 방식의 화장품 제조업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덧붙였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페르소 성공하면 화장품 제조업 서서히 사라진다"

현지에서 만난 로런 리즈만 로레알 미국법인 부사장은 “2021년 제품을 정식 출시하기에 앞서 기기를 판매하거나 렌털하는 다양한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로레알은 제조업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기반의 디바이스를 빌려주고, 화장품 원재료를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서비스업으로 한 발짝 다가가게 되는 셈이다. 질레트가 면도기 본체는 싸게 파는 대신 면도날을 팔아 수익을 내고, 네슬레가 머신이 아니라 커피 캡슐로 돈을 버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로레알 사례처럼 사업의 경계가 사라지고 전통 제조업체가 서비스업으로 변신을 시도하는 징후는 CES에서 뚜렷이 포착된다. 지영조 현대자동차 사장은 “도심형 항공 모빌리티(urban air mobility)는 100년간 자동차산업의 기반이 된 엔진과 도로에서 벗어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소니가 이번 전시회에서 전기자동차를 내놓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애플 사례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애플 매출에서 아이폰 아이패드 등 기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50% 아래로 떨어졌다. 서비스 비중은 20%를 넘어 수직 상승 중이다.

로레알의 페르소가 성공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넷북, 3D TV, 안경 등 CES에서 큰 화제가 됐지만 실패한 제품이 수두룩하다. 다만 페르소는 AI와 스마트폰의 발전이 기존 산업에 어떤 충격을 줄지 예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기엔 충분하다는 평가다.

니콜라 이에로니무스 로레알그룹 부회장은 “로레알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소비자의 니즈에 따라 정확하고 거의 무한대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뷰티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변화의 키워드는 이 문장에 모두 들어가 있는 셈이다.

로레알 페르소의 마지막 메시지는 실행이다. 지난해 로레알은 CES에서 별다른 혁신적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반면 P&G는 뷰티 디바이스인 ‘옵트’를 내놔 화제의 중심에 섰다. 피부에 대기만 하면 색소 침착 부위를 찾아내 보습제와 미네랄이 들어 있는 세럼을 저절로 분사해주는 기기였다.

로레알은 이를 보고 1년간 준비해 반격에 나섰다. CES 현장에서 기술 발전과 경쟁사의 움직임을 보고 반성과 계획 그리고 실행에 나선 결과가 페르소라는 평가다. 로레알은 페르소를 본사가 아니라 ‘로레알 테크놀로지 인큐베이터’를 통해 개발했다. 혁신적 제품은 전통조직이 아니라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조직이론에 충실한 선택이었다.

올해 CES 전시장을 찾은 한국인 관람객은 8000~9000명에 이를 것으로 주최 측은 예상하고 있다. 국적으로 구분하면 한국은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다. 매년 한국인 관람객이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한 기업인은 “미래는 막막하고 뭔가 해야 할 것 같아 직원 몇 명을 데리고 왔다”고 했다.

이들이 CES를 돌아본 결과가 관광이 아니라 혁신의 시작이 되는 것은 결국 실행에 달려 있다는 것을 로레알은 보여준 듯하다.

라스베이거스=김용준 생활경제부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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