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정치판] '한 표의 힘은 총알보다 강하다'…그러나!

입력 2020-04-12 14:38   수정 2020-04-12 15:02


‘4·15 총선’은 사상 유례없은 ‘괴이한 선거’였다. 우리 정치권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례들을 만들어냈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정치학도들의 연구 대상이 풍성해졌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이번 총선 과정에서 연구할 주제들이 백화점 진열대처럼 늘여져 있어서다.

발단은 선거법 개정이다. 준(準)연동형 비례대표 산정 방식은 수학자도 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각 정당의 목소리를 ‘짬뽕’해 ‘섞어찌개’를 만들다보니 그렇게 됐다.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은 그대로 선거가 치러지면 불리하다고 판단해 위성정당 창당을 공언했고, 행동에 옮겼다. 위성정당 창당을 ‘막장’ ‘꼼수’라고 비판했던 더불어민주당도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었다. 스스로 “소수 정당의 의사를 의정에 반영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헌신짝 처럼 버렸다. 원내 제1, 2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은 것은 정당 역사상 유례가 없는 정치 왜곡, 정치 형해화다. 여당의 비례 위성정당에 참여하지 못한 범여 세력들이 또 다른 비례의원 전용정당을 만들어 서로 ‘적통’경쟁을 벌이는 희한한 광경을 연출하고 있다.

정당 이름도 헷갈린다. 더불어민주당, 더불어시민당, 열린민주당, 통합민주당, 미래통합당, 미래한국당, 미래당, 미래민주당, 새누리당, 한나라당…. 준연동형 도입으로 비례대표 의석 확보만을 노린 정당 창당이 꼬리를 물면서 35개 당 이름을 담느라 비례대표 투표 용지만 48.1㎝가 됐다. 역대 최장이다. 전자개표를 하려면 투표용지 길이가 34.9cm 이내여야 해서 이번 총선 개표는 손으로 작업해야 한다.

‘괴이한 선거’는 이뿐만 아니다. 포퓰리즘 경쟁은 역대 최상급이다. 수 조원 알기를 우습게 안다. 수 십조, 수 백조원이 쉽게 입에 오르내린다. 자기 돈이라면 이럴까 싶다. 전국민에 돈 살포라는 달콤한 공약은 곧 우리 주머니 또는 자손들의 주머니를 터는 것으로 돌아올 것이다. 경제를 살리자면 정말 필요한 곳, 필요한 사람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데 여야는 이에 아랑곳 없이 ‘모든 국민들에게’라는 손 쉬운 길을 택했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할때 자주 등장하는 토끼의 지혜 사례가 있다. 토끼는 포식자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자기 집 주변의 풀은 뜯지 않고, 멀리 나가서 먹는다고 한다. 눈앞의 쉬운 먹잇감을 포기하고 멀리나가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생존본능이자 지혜다. 지금 우리 정치권은 토끼만도 못한 것 같다. 눈 앞의 표를 얻기 위해 주변의 풀만 손쉽게 뜯으려 한다. 포퓰리즘은 곧 우리를 망가뜨리는 ‘복수’로 돌아올 것이다. 여야 모두 이를 잘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정당법 제2조엔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추천 또는 지지함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의사형성에 참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민의 자발적 조직을 말한다’라고 돼 있다. 우리 정치권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진정 책임있게 하고 있나.

결국 심판은 유권자가 할 수 밖에 없다. 선거는 차악의 후보를 뽑는 과정일뿐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선거는 민주주의의 기본이자 최후보루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며 한 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링컨의 말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강의 거대한 물줄기도 작은 잎에 맺힌 물방울들에서 발원한다. 한 표 한 표가 모여 거대한 ‘민심’이 되고 이 민심의 물줄기는 큰 배를 뒤집을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진리다.

단, 투표가 총알보다 강하기 위해선 조건이 있다. 과녁을 정확하게 조준해야 한다. 후보자가 과연 우리 지역, 나라를 위해 제대로 일 할 수 있는지 공약부터 꼼꼼하게 점검하는 것이 유권자들의 기본 의무다. 그런 기본 의무를 방기한 채 그저 여론에만 휩쓸리고, 혈연과 지연, 학연에 의해 후보자를 고른다면 내 한 표는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할 것이다. ‘무늬만 멋진’ 후보가 아닌 ‘속살까지 멋진’ 후보를 분별해 낼 수 있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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