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설치·영상으로 풍자한 정치 무대

입력 2020-05-04 17:12   수정 2020-05-05 00:24


무대는 연출된 공간이다. 배우들의 대사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되고 꾸며진 것이다. 각국의 정치지도자가 만나거나 중요한 사안을 발표하는 자리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집무실이나 의사당, 회담장 등을 장식하는 그림과 소품 하나에도 나름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연극무대 한 편에서 연기자에게 대사나 동작을 일러주는 프롬프터(prompter)처럼 이런 요소들이 제각각 정치적 기호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 원서동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장종완(37) 개인전 ‘프롬프터’는 이처럼 상징적 요소가 가득한 정치·외교 무대의 속성을 회화와 조형, 설치 작업으로 유쾌하게 비트는 자리다. 프로파간다(선전, 선동)로 드러난 것과 이면의 것이 다른 이중성, 교묘한 상징 조작 등을 은유하고 풍자한다.

전시장은 연극무대처럼 꾸며져 있다.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가 자리잡은 옛 공간사옥의 소극장 객석 앞에 연단과 연설대, 깃발, 배경화, 프롬프터 등을 배치해 연극무대 같은 정치무대를 재현했다. 언뜻 보면 여느 국가 정상의 연설 무대처럼 격식과 규모를 갖춘 분위기다.

한데 자세히 보면 뭔가 다르다. 깃발은 동물이 그려진 밍크담요로 만들었고, 깃봉에는 무궁화 같은 상징 대신 버섯, 사슴뿔을 얹었다. 연설대 위의 꽃장식은 고급 화초가 아니라 플라스틱 모조품이다. 연설대 앞면에는 국가의 상징물이나 엠블럼 대신 사자 그림이 삐딱하게 붙어 있다. 무대 앞 양쪽에 설치된 프롬프터의 모니터에서는 효과음과 남북한의 선전 영상,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 초등학교 반장선거 연설 표본을 자막으로 뒤섞은 영상 등이 흘러나온다. 정치무대의 구성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왜곡함으로써 이를 희화화한다.

장종완은 이상향을 좇는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과 환상, 그 이면에 자리한 현실의 모순을 우화적인 서사를 담은 그림과 드로잉, 애니메이션 등으로 이야기해온 작가다. 특히 동물가죽 위에 직접 그린 작업이 유명하다. 이번에는 정치공간의 신화적·권위적 인테리어를 말랑말랑하게 비틀고 느슨하게 만들어 그만의 블랙코미디를 연출했다.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렸을 자리를 동물이나 곤충 액자가 차지하고, 체제 선전 문구가 있을 자리엔 유행가 가사를 새겼다.

정치공간에 걸린 초상화와 역사화를 작가 특유의 우화적 표현기법으로 재해석한 ‘초상화’ 시리즈, 정상회담장의 풍경화를 연상케 하는 신화적 분위기의 ‘푸른 아우라’ 등 회화와 설치, 영상 등 25점을 오는 8월 16일까지 선보인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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