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world View] Fed의 고육지책…'평균물가목표제'는 성공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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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09-01 17:49   수정 2020-09-02 00:07

[한상춘의 world View] Fed의 고육지책…'평균물가목표제'는 성공할 수 있나

‘앞으로 10년 동안 통화정책을 어떻게 운용할 것인가’란 대주제를 놓고 열린 ‘2020 잭슨홀 미팅’에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평균물가목표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할 뜻을 밝혔다. 평균물가목표제란 과도기 통화정책 가이드를 말한다. Fed의 양대 목표 중 하나인 고용 창출을 위해 실물경기가 정상화되기까지 물가상승률이 목표선(근원 개인소비지출 물가 상승률 기준 2%) 위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이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반응하는 주식시장은 울트라 금융완화 기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안도감에 안정을 찾고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 이후 월가에서는 “앞으로 주가가 오를 일만 남았다”는 극단적인 낙관론까지 나올 정도다. 하지만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이후 불가피하게 발생할 달러 약세, 자산시장 거품, 인플레이션 우려 등의 부작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새로운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 상회해도 용인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배경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3월 초 Fed 역사상 두 번째로 열린 임시회의에서 결정된 긴급통화정책 내용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당시 통화정책 여건에서 가장 어렵다는 ‘아무도 모른다(nobody knows)’는 사상 초유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Fed는 한순간에 무너지는 증시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융위기 때보다 더 강력한 금융완화 정책을 꺼내 들었다.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한 번에 서너 단계 내리는 빅 스텝 방식을 부활시켜 제로(0) 수준까지 낮췄다. 양적완화는 매입 대상에 정크 본드(코로나 사태로 투기 등급으로 떨어진 회사채)까지 포함시켜 중앙은행의 핵심 기능인 “최종 대부자 역할까지 포기했다”는 비판을 들을 만큼 무제한 통화공급 방침을 정했다. 한마디로 코로나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모든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모든 위기는 유동성 위기, 시스템 위기 그리고 실물경기 위기 순으로 거치는 것이 전형적인 경로다. 시스템 위기를 극복하면 자연스럽게 실물경기가 살아나는 점을 고려해 유동성 위기와 실물경기 위기로 압축하는 시각도 있다. 위기 극복도 이 단계를 따라야 한다. 양적완화는 유동성 위기를 수습하고, 제로 금리는 통화정책 추진 경로(유동성 공급→금리 하락→총수요 증가→실물경기 회복)상 금융과 실물 간의 연계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다.

문제는 1990년대 이후 발생한 유럽 통화위기, 아시아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는 단계별로 이행이 순조롭지 못하고 코로나 위기는 ‘절연(insulation)’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주된 이유는 위기의 성격이 다중·복합·대형 위기인 데다 금융위기 이후 추진된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정상화할 출구전략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해 물가를 감안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져 유동성 함정에 처했기 때문이다.
6월 이후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에 곤혹
Fed가 통화정책의 최단기 시차인 9개월도 안 되는 지난 6월 중순 이후부터 나타나고 있는 디스인플레이션 현상에 곤혹스러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디스인플레이션이란 물가가 계속 오르기는 하지만 그 상승률이 둔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경기 순환 면에서 이 현상을 오랫동안 방치할 경우 성장률과 물가가 동시에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져 디플레이션으로 악화되는 것이 관례다.

Fed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률이 둔화된 이후 닥칠 디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무제한 통화공급 기조를 지속해 나가면 자산시장에 낀 거품이 더 심해진다. 실물경기도 과도한 금융 지원이 경제주체들의 의욕을 꺾는 ‘코브라 효과’가 우려돼 오히려 회복이 지연될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요요현상’ 때문에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해 나가는 경우보다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된다.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서 수익률 곡선 통제 방식에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Fed가 구상 중인 수익률 곡선 통제 방식은 엄밀하게 따지면 2차 대전 이후 추진했던 금리상한제를 결합한 전통적인 통화론자(“빚내서 더 쓰자”는 현대 통화론자와 구별)들이 주장한 ‘통화 준칙’이다. 이 준칙에서는 시장금리가 금리상한선을 넘어가면 자동적으로 채권을 매입해 시장금리를 떨어뜨리고 통화 공급이 늘어난다.

3월 임시회의 이후 무제한적 통화 공급으로 디스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현재 여건에서는 Fed의 통화정책도 변화를 줘야 한다. 유동성 위기를 수습한 이후 이제는 시장 기능이 잘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실물경기를 조속히 회복시켜야 한다. 디스인플레이션 조짐이 나타난 이후 금리상한제, 수익률 곡선 통제(YCC), 물가 목표치 상향 조정 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내놓은 대안이 평균물가목표제다.

Fed가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한 의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1913년 설립 이후 가장 큰 변화라고 평가받는, Fed의 목표가 바뀐 2012년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당시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상황에서 실물경기 회복세가 미약하자 물가 안정과 고용 창출을 양대 책무로 설정해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해 나갔다. 그 이후 통화정책은 후자에 우선순위를 둬 추진해 왔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 만에 같은 상황에 놓이자 이번에는 Fed가 평균물가목표제를 도입해 고용 창출을 우선하는 통화정책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셈이다. 지금까지 밝힌 Fed의 계획으로는 2021년 말까지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물경기가 제 궤도에 이르지 못해 고용 창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그 이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산 거품 방치 땐 기업가 정신 약화 우려
문제는 평균물가목표제 채택에 따른 부작용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을 지속해 나갈 경우 가장 우려되는 점은 ‘트리핀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 위상이 약화될 가능성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미국은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신뢰도가 떨어져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평균물가목표제 도입 이후 물가상승률이 목표선을 상회하는 것을 용인하더라도 고용 창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전통적 목표인 물가 안정을 영원히 포기하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Fed의 양대 책무인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간 역관계를 잘 설명하는 필립스 곡선이 평탄화된 지는 오래됐다. 목표선을 벗어나는 인플레이션 국면이 지속된다고 하더라도 실업률이 하락하지 않으면 울트라 금융완화 정책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주식 등 자산시장에 낀 거품도 그렇다. Fed의 통화정책 관할 범위를 실물경제만을 고려하는 ‘그린스펀 독트린’을 뛰어넘어 자산시장까지 포함하는 ‘버냉키 독트린’으로 확대시킨다 하더라도 ‘부(富)의 효과’만으로 지속 가능한 실물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을 달성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자산 거품을 조장할 경우 기업가는 창조적 파괴 정신이 약화되고 투자자는 경제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꺾일 가능성이 높다.

Fed의 목표 달성은 코로나 위기를 극복해 시장 시스템이 복원되고 실물경기가 제 궤도에 도달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평균물가목표제는 과도기 단계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면 또 다른 통화정책 가이드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1913년 설립 이후 100년 가깝게 누린 ‘화려한 시대’가 금융위기로 마무리되고 ‘고난의 시기’가 시작됐다면 Fed는 ‘신뢰의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세계 경제가, 국제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
Fed와 비교되는 韓銀
성장률 전망 낮춰놓고 금융완화 등 대책 없어
한국은행이 내놓은 경제 전망과 직전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결과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무책임하다”는 극단적인 비판은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고육지책 속에 평균물가목표제를 채택한 미국 중앙은행(Fed)의 자세와 대비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경제 전망을 대폭 하향 수정해 놓고 ‘선제성(preemptive)’을 중시하는 통화정책은 정작 대책을 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 전망도 이해가 안 간다. 지난 5월 전망치를 발표한 이후 3개월 동안 우리 경제는 소비, 산업생산, 수출뿐만 아니라 부(富)의 효과가 기대되는 주가 등 자산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이번 전망도 올해 말까지 불과 4개월 남짓 남겨놓은 시점에 발표됐다. 8월 중순 이후 재확산 조짐을 보이는 코로나 사태가 연말까지 지속될 경우 올해 성장률이 -2.2%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별도의 전망치를 제시했다. ‘과연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코로나 이외 어떤 요인이 전망치를 대폭 떨어뜨릴지’를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예측 시점도 대내외 예측기관의 수정 전망치가 다 나온 뒤에 발표됐다. 수정 전망치도 국민이 느끼는 체감적인 측면에서 그게 그 수준이다. 마이너스 국면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는 성장률 -0.5%포인트 이내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예측이 어려울수록 경제 주체를 안내하는 역할이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 혹시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예측력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국은행과 통화정책 여건상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동성 함정’에 처해 있는 한계를 들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는 것은 이해되지만 강남을 비롯한 부동산 규제정책을 의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갖게 한다.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한다면 한국판 양적완화와 같은 유동성 공급정책을 내놓지 않은 점도 짚어봐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래가 불확실함에 따라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이 떨어지는 ‘이분법 경제’에서는 유동성을 풀 경우 주식 등 자산 거품만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는 공감이 간다. 통화 유통 속도, 통화승수 등 경제활력지표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 주는 대목이다.

하지만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해서 방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Fed처럼 경기 회복과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일시적으로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 안정을 포기할 정도로 흘러넘치게 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고, 경제 주체가 느끼는 불안 심리를 안정시켜 금융과 실물 간 연계성을 높이는 방안도 있다.

Fed의 자세와 통화정책을 무조건 따르자는 얘기는 아니다. 디스인플레이션이란 애매한 상황에서 ‘자칫 통화정책이 수정되는 것이 아니냐’고 경제 주체들이 불안해할 때 평균물가목표제란 고육지책을 내놓으면서 경기와 고용시장이 제 궤도에 도달할 때까지 울트라 금융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시킨 Fed의 자세를 우리 국민이 더 절실하게 한국은행에 바라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sch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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