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정경제? 정치·노동 권력 결탁을 깨야

입력 2020-11-05 17:43   수정 2020-11-06 00:08

나라가 왜 이래? 유럽은 1970년대 오늘날의 한국과 같은 처지였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속했던 성장은 1968년 노동운동, 환경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이 휩쓸며 급제동이 걸렸다. 자본과 두뇌가 미국으로 떠나고 성장이 후퇴하며 실업률이 치솟고 물가가 폭등했다.

유럽이 흔들리자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 등 세계 석학들이 모여 원인을 진단했다. 결론은 시장에 대한 규제와 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의 역할은 커졌으나 정부가 이해관계 집단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치권력이 노동 권력에 기울어 노조와 좌파 시민단체에 휘둘리고, 경제권력은 억눌려 민주주의가 기능을 상실함으로써 국가운영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시작된 유럽의 쇠락은 영국과 북부 유럽에서는 균형을 복원해 멈췄으나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에선 극좌 신생 정당이 출현하고 경제위기가 반복되면서 악화했다.

민주주의는 권력의 균형이다. 한국은 ‘촛불혁명’으로 정치·경제·노동 권력의 균형이 무너졌다. 민주화 이후 경제권력은 정치권력과 노동권력의 협공을 받다가 노동계와 좌파 시민단체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축이 되고 대기업은 적폐로 취급됐다. 그 결과 정권 초기에는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이, 지금은 ‘기업 3법’과 삼성을 겨냥한 보험업법 그리고 ‘노조 3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기업 3법은 공정경제를 확립하고 보험업법은 기업의 공공성을 강화한다지만 알짜배기 중소기업과 삼성에는 치명적이다. 노조 3법도 특권 노조의 강성투쟁만 부추긴다. 대주주라도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반면, 주식 1%라도 취득한 투기 펀드는 3일 후 대표소송 또는 다중대표소송을 제기하고, 삼성은 국민연금이 장악한 준(準)공기업이 될 수 있다. 불법 파업으로 해고된 근로자가 노조 간부로서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고, 파업 준비 시간에 대해서도 급여를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불평등의 원인을 자본에 돌린다. 실상은 전혀 다르다. 재벌기업이 노조에 장악돼 정규직 조합원은 고임금과 고용안정 특혜를 누리나, 그 부담은 중소기업에 전가돼 사업주는 간신히 버티고 근로자는 비정규직화된다. 남부 유럽이 쇠퇴의 길을 계속 가는 이유도 비슷하다.

오늘날 불평등은 자본이 아니라 기술혁신과 기득권의 과보호에서 비롯된다. 일하는 데 필요한 숙련에 따라 취업과 소득기회는 달라지는데, 노동시장의 경직성은 좋은 일자리로의 이동을 가로막는다. 프랑스 좌파 학자 토마 피케티 교수도 주장을 바꿔 《자본과 이데올로기》(2020)에서 좌파 엘리트와 우파 상인의 대립적 공생이 불평등을 만들고 반(反)민주주의 정치제도가 이를 방치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미몽에 빠져 있다. 개혁이 아니라 재벌기업과 강성노조의 담합을 공고히 하는 제도가 10% 특혜 근로자와 90% 소외 근로자의 단절을 키운다.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정치권력은 경제권력과 노동권력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어느 한쪽에 쏠리면 불평등은 커진다. 오스트리아 출신 정치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미래를 보는 혜안으로 오늘날 더 유명해졌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1942)에서 자본주의가 기업,노조 등 이해관계 집단의 정책참여를 중시하는 ‘조합주의’로 변질하면서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지식인은 자본주의에 부정적인데 이들이 정치에 뛰어들어 반자본주의를 주도한다고 봤다.

그의 경고는 뒤늦게 자극제가 됐다. 영국, 독일 등 북부 유럽은 정치권력이 노동권력과의 유착을 깼고 좌파 본거지인 프랑스와 남부 유럽도 힘들어하며 따라간다.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는 친(親)자본주의 개혁을 했다. 진짜 공정경제는 정치권력이 노동권력과의 결탁을 깨는 데 있다. 이게 문 정부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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