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간 핑퐁에 첫 발도 못뗀 '폐지방 재활용'

입력 2020-12-14 17:11   수정 2020-12-15 00:58

“한 해에 버려지는 폐지방의 부가가치만 수조원 이상입니다.”

지방 흡입수술 등의 과정에서 빼낸 인체 폐지방을 의약·미용품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을 준비 중인 한 바이오 기업 대표는 “정부 약속만 믿고 수십억원을 투자했는데 규제는 3년째 똑같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값비싼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규제가 없는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국내 바이오 회사들이 인체 폐지방 규제를 풀어주겠다는 정부 약속을 믿고 투자에 나섰다가 줄줄이 고사 위기에 처해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세 차례에 걸쳐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보건복지부가 요지부동인 탓이다.

폐지방은 세포외기질과 콜라겐을 뽑아 인공피부, 의약품, 의료기기 원료로 쓸 수 있다. 1㎏에 약 2억원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게 업계 추정이다. 지방흡입술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이뤄지는 한국에서 버려지는 폐지방은 연 20만㎏에 이른다.
부처 간 핑퐁게임에 속타는 업체들
14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규제 완화를 약속한 폐기물관리법은 3년째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올 들어 주무부처인 환경부와 복지부는 이와 관련한 협의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2018년 4월 바이오 분야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폐기물관리법 개정을 약속했다. 폐기물관리법 13조 2항에 있는 의료폐기물의 예외사항에 폐지방을 포함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후 폐지방 규제 완화는 정부의 신년 업무보고나 규제완화 대책에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올해 1월에는 박능후 복지부 장관이 주재한 ‘바이오헬스 핵심 규제 개선방안’과 석 달 뒤 열린 홍남기 부총리가 주재한 제1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서도 폐지방 규제 완화가 들어갔다.

현재는 시험·연구 목적에 한해 폐지방 처리를 허용한다. 의료폐기물은 폐기물 전문업체가 모두 수거해 소각하도록 돼 있다. 폐지방에서 콜라겐을 추출해 미용 수단으로 활용하지만 본인 신체에서 나온 폐지방만 쓸 수 있다. 지방흡입술 시행 후 나오는 타인의 폐지방을 활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이렇다 보니 상업용 제품 생산 자체가 불가능하다.
해외에선 폐지방 재활용 활발
규제 완화를 위해선 환경부가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환경부 관계자는 “폐지방을 어느 용도로 사용할지, 수집한 뒤엔 운반과 처리 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하위 법령이 없다”며 “의료 담당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관련 계획을 수립하는 게 순리”라고 말했다.

복지부는 환경부가 먼저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고위공무원은 “폐기물 관리법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개정안이 나온 뒤에 논의하면 된다”며 “아직 복지부 내에서 관련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폐지방은 업계에선 금보다도 비싼 고부가가치 물질로 보고 있다. 성인이 복부 지방흡입술을 하면 폐지방이 3~10㎏가량 나온다. ㎏당 6~15g의 세포외기질을 추출할 수 있다. 세포외기질은 필러를 비롯해 관절 수술 시 인체 구멍에 넣는 조직 수복제, 화상에 쓰는 창상 회복 연고 등을 만들 수 있다. 세포외기질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콜라겐은 5㎎당 약 61만원으로 금(232원)보다 2600배가량 비싸다.

미국은 2014년 죽은 사람이 기증한 피부에서 떼낸 지방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폐지방을 이용한 치료제 개발도 활발하다. 지방이 위축되는 질환인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치료제가 대표적이다. 이환철 엘앤씨바이오 대표는 “얼굴 등에 지방이 소실되는 증상이 나타나는 질병 등에 폐지방을 삽입할 수 있다”며 “자신의 지방을 떼 쓰는 방식보다 후유증도 적고 비용도 싸다”고 말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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