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조지'에 매몰된 與…학계 "녹슨 이념이 부동산 시장 더 망쳐"

입력 2020-12-28 17:48   수정 2021-01-05 18:46

정치권이 부동산 정책을 놓고 ‘사상 논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변창흠 신임 국토교통부 장관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이슈의 한가운데서 논쟁의 불을 지폈다. 취임을 앞둔 변 장관이 ‘토지 불로소득’ 환수를 주장한 데 이어 유 이사장이 지난 25일 “더 이상 땅을 사고팔아서 부자가 돼야지 하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게 계기였다. 이 과정에서 ‘토지 단일세’를 제안한 헨리 조지를 중심으로 토지의 사적 소유 금지를 주장한 토머스 페인,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등의 급진사상이 이들 주장의 배경으로 꼽혔다. 여당이 종합부동산세율 인상, 임대차 3법을 관철시킨 데 이어 ‘1가구1주택 기본법’ 등 반(反)시장적인 부동산 법안을 추가로 내놓는 것도 이들의 이론과 사상적인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학계는 “녹슨 이념으로 가뜩이나 망가진 시장을 더 망치려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조지스트’ 변창흠 29일 취임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변 장관 인사를 재가했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변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세종대 교수 출신인 변 장관은 학계에서 전형적인 ‘헨리 조지 신봉자’로 꼽힌다.

그는 2015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사장 시절 한 언론 기고문에서 “대학 때 헨리 조지라고 적힌 저자의 《진보와 빈곤》과의 인연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들었다”고 했다. 부동산 시세차익은 불로소득인 만큼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지난해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린 ‘토지공개념 논의와 정책 설계: 개발이익 공유화 관점에서’ 논문에서도 부동산 대책과 관련해 “불로소득과 개발이익에 대한 관리와 환수 방안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논문은 토지의 사적 소유를 비판한 페인과 “소유는 특권과 전제를 낳는 힘의 지배”라고 주장한 프루동 등의 사상을 논거로 삼기도 했다. 페인은 자연법 개념을 근거로 토지는 인류의 공동재산이고, 개인의 재산이 될 수 있는 부분은 토지 그 자체가 아니라 향상된 가치에 한정해야 한다고 봤다. 프루동은 “소유는 도둑질”이라고 주장하면서 소작료·임대료·지대·이자·이윤을 모두 불로소득으로 규정했다. 프루동의 사상은 소유와 사용을 분리한 중국 토지정책의 근간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이사장은 지난 25일 ‘진보와 빈곤’을 주제로 한 유튜브 방송에서 헨리 조지를 불러들였다. 그는 방송에서 정치권 등에 “강력하고도 혁신적이고 상상할 수 없는 부동산 정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며 “헨리 조지가 제안한 토지 단일세를 우리나라 조건에 맞게 실행할 방안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토지 단일세는 다른 세금을 없애는 대신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모두 걷어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취지의 세금이다. 국내에서는 노무현 정부 당시 종합부동산세 도입의 기본 아이디어가 됐다.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종부세 정책을 주도했던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가 헨리조지포럼 출신이다. 문재인 정부도 지난해 종부세 최고세율을 2%에서 3.2%로 올렸고, 내년에는 6%로 다시 한 번 상향한다.
갈수록 급진화하는 與 부동산 기조
야권과 학계는 갈수록 급진적으로 흐르는 여권의 부동산 정책 기조에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용도폐기된 낡은 이념을 무리하게 끌어들여 실패한 반시장적 부동산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더욱 반시장적으로 가려 한다는 것이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임대주택에서도 살지 않으려 하는데 그런 이념들에 공감하겠느냐”며 “그야말로 이상론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논리적 허점도 거론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헨리 조지는 땅값이 올랐을 때 세금으로 다 환수해간다면서 내렸을 때의 손실보전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며 “한국의 종부세도 이런 식”이라고 비판했다. 유 이사장조차 25일 방송에서 헨리 조지의 경제학적 주장에 대해 “오류가 많다”고 인정했다.

여권 인사들이 헨리 조지 등 사상가들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때로는 왜곡하며 부동산 정책을 짜맞추려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은 “헨리 조지는 인간의 노력이 들어간 건물 등 토지의 가치를 올리는 활동에는 세금을 매기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며 “땅과 건축물 모두를 싸잡아 수익을 모두 환수해야 한다는 우리나라의 조지론자들을 헨리 조지가 만난다면 아마 크게 놀랄 것”이라고 꼬집었다.
“집값 상승 자체를 문제시 말아야”
전문가들은 집값이 오르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시선부터 거둬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파트가 어때서》 저자인 양동신 건설엔지니어는 “신규 주택을 공급하거나 노후화된 주택을 새것으로 교체하려면 지속적으로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며 “주택 가격의 인플레이션(상승)이 존재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투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과도한 상승은 문제지만,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진다면 아무도 분양받지 않으려 할 것이고 시장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넘쳐날 것”이라고 했다.

‘1가구1주택 기본법’을 대표발의한 진성준 민주당 의원도 지난 7월 TV 생방송에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관련해 “그렇게 해도 집값 안 떨어진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면 누가 수억원을 내고 재개발·재건축·리모델링을 하겠느냐”며 “1가구1주택 기본법 같은 반시장 법안들은 부동산시장 붕괴와 주거환경 악화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도원/김소현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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