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만 먹고 어떻게 사냐고?…로마 검투사도 채식을 했다

입력 2021-02-25 17:25   수정 2021-02-26 02:07

“도살장이 유리로 돼 있었다면 모든 사람들은 채식주의자가 됐을 것이다.”

19세기 러시아 소설가 톨스토이가 쓴 문장이다. 비건의 출발점은 ‘각성’이다. 유리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난 뒤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인가”하는 고찰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많은 사람은 이 고통의 공감이라는 과정을 거쳐 비건의 길로 들어선다. 어떤 이들은 건강을 위해 비건이 되겠다고 나섰다. 환경 때문이란 이들도 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동물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비건이 됐는데 건강도 좋아졌다.”

‘육식=힘·건강’이란 미신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미국의 파트리크 바부미안. 그는 555㎏의 멍에를 들고 10m를 걸었다. 세계 기록을 경신하는 순간 환호하는 관중 앞에서 그는 이렇게 외쳤다. “비건 파워(Vegan power)”. 바부미안에게 물었다. “고기도 안 먹고 어쩌면 그렇게 황소처럼 힘이 센가요?” 그가 답했다. “황소가 고기를 먹나요?”

그의 답은 우리를 한 가지 질문 앞으로 몰아세운다. “‘동물성 단백질=힘·건강’이란 공식은 미신일까?” 채식주의자들이 받는 질문은 그 연장선상에 있다. “고기를 안 먹고 힘이 나, 풀만 먹고 어떻게 살아?” 바부미안, 칼 루이스, 검투사의 사례는 우리의 상식을 파괴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병을 예방하는 데도 채식은 중요한 과제다. 육식이 심장질환, 암, 제2형 당뇨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는 과학적인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이들 질병은 한국인의 사망 원인에서도 앞 순위를 차지한다.

비건들은 “식물성 단백질만으로도 필요한 영양소를 충분히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류학자들도 이 주장에 한 표를 던진다. 인간의 신체가 채식에 적합한 구조라는 분석이다. 육식동물은 장의 길이가 짧은 데 비해 인간은 길다. 식물을 소화시키기에 적합하다. 식물을 씹기에 적합한 어금니, 과일, 채소 등의 색상을 구별하는 시각(3색각) 등도 ‘인간은 원래 채식동물’이란 주장의 근거다.
가장 엄격한 채식, 비건
동물 학대도 비건이 되는 이유로 꼽힌다. 인간의 동물 학대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도살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우유를 예로 들어보자. 갓 태어난 송아지를 빼앗긴 젖소는 기계를 부착해 매일 우유를 짜낸다. 이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워 원래 수명인 25년을 한참 밑도는 4~5년 만에 자기 발로 설 힘도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돼 도살장으로 향한다.

동물 학대의 사례가 다양한 만큼 채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채식을 지키는 엄격함의 정도에 따라 △페스코 △락토오보 △오보 △락토 △비건 등의 유형이 있다. 비건은 가장 엄격한 단계다. 육류와 해산물을 먹지 않고, 모피와 가죽 등 동물성 제품과 벌꿀까지 거부한다. 락토는 비건의 허용 품목에서 유제품을 더한 단계며 오보는 채식하면서 달걀을 섭취한다. 유제품과 달걀, 어패류까지 섭취하면 페스코다.
비건=환경운동가
환경을 위해 비건이 되는 이들도 있다. “매일 비건 한 사람이 5000L의 물, 20㎏의 곡식, 2.7㎡의 삼림지대를 보존하고, 9㎏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일 수 있다”고 비건들은 주장한다.

소고기 1㎏을 얻기 위해 약 1만5000L의 물이 필요하다. 지구 온난화의 가장 큰 요인인 탄소의 전체 배출량의 최소 18% 이상이 축산업 때문에 발생한다.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일어나는 산림 파괴의 91%가 가축, 특히 소의 사료 경작지 확보 때문이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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