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로 시장 장악한 기업들, 돈 벌었지만 R&D는 손놨다

입력 2021-05-16 17:02   수정 2021-05-17 03:35


지난 25년간 글로벌 업종별로 상위 3개 기업이 경쟁사나 신흥기업을 인수합병(M&A)해 과점화하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과점화가 기업의 수익성을 향상시킨 반면 기술 혁신을 저해해 경제와 산업의 역동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1995년 이후 25년 동안 미국과 일본, 유럽 내 76개 업종의 90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업종별 상위 3개 회사의 매출은 270% 늘어났다. 같은 기간 업종별 4위 이하 기업의 매출 증가율(240%)보다 30%포인트 높은 수치다. 국가별로는 미국 상위 3개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하위 기업보다 60%포인트 더 높았다. 유럽은 35%포인트, 일본은 10%포인트 각각 더 높았다.

2000년까지만 해도 상위 3개사와 하위 그룹의 매출 증가율 격차는 미국 10%포인트, 유럽 5%포인트 안팎이었지만 20년 새 격차가 6~7배로 더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과점화를 촉진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 활발해진 M&A를 꼽았다. 지난 5년간 세계의 M&A 규모는 20조달러(약 2경2590조원)를 넘어섰다. 어니스트 류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금융 완화에 따른 저금리 수혜가 주로 상위 기업에 돌아가면서 M&A 등을 통한 과점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의 정보기술(IT) 업종에서 M&A를 통한 과점화가 가장 활발하게 일어났다. 애플은 2019년 미국 인텔의 스마트폰 반도체 사업을 10억달러에 인수했다. 페이스북도 인스타그램과 와츠앱을 사들이는 등 상위 3~4개 IT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업종별로 ‘빅3’ 반열에 진입한 기업은 과점화 체제를 구축해 수익성과 효율성을 한 단계 더 높이는 기회로 삼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과점화가 진행된 업종 전반에 걸쳐 지난 40년간 매출 대비 이익률이 일관되게 상승했다.

과점화가 가장 활발했던 IT 분야뿐 아니라 헬스케어와 소비자 대상 서비스 업종 실적도 크게 향상됐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는 올 1분기 매출이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1분기를 넘어섰다. 지난 1월 미국의 보석 브랜드 티파니를 인수한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8년 인도의 인터넷 상거래기업 플립카트를 사들인 미국 월마트도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과점화의 그늘도 뚜렷해지고 있다. 과점화가 기술 혁신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금융 완화가 이어지자 기업들은 여유 자금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에 활용했다. 과점화로 경쟁 강도가 약해지자 적극적으로 R&D 투자를 늘릴 유인이 사라졌다는 설명이다.

2016~2020년 세계 상장사의 R&D 투자 증가율은 직전 5개 연도 대비 20%로 떨어졌다. 증가율이 50%에 달했던 2006~2010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M&A가 늘어나면서 과점화가 빨라진 2010년 이후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다. IMF는 지난 3월 보고서를 통해 “업종별 주도 기업이 M&A로 점유율을 높이는 것은 경쟁사의 경쟁 의욕 상실과 R&D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기술 혁신의 저하는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990년대 3%를 넘었던 주요 7개국(G7)의 잠재성장률은 2019년 1.4%로 떨어졌다. 인구 증가율 둔화와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 없는 디지털 경제의 진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지만 과점에 의한 기술 혁신의 정체도 주요인으로 지적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과점화의 부작용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진 공정거래제도를 개선해 시장의 과점화를 막으려는 움직임이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활발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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