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恨과 맞닿은 극적 선율"…초여름밤 수놓는 러시아 음악

입력 2021-05-30 17:03   수정 2021-05-31 02:22


초여름 국내 클래식계에 러시아 열풍이 불고 있다. 다음달 러시아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는 음악회가 잇달아 열린다. 실내악단은 물론 대표적 교향악단들이 쇼스타코비치, 차이콥스키, 프로코피예프, 라흐마니노프 등의 음악을 선사한다. 러시아 음악의 풍년이다.

국내 현악4중주단의 선두 주자인 노부스콰르텟은 다음달 16~1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현악4중주 전곡(15곡)을 연주한다. 국내에선 좀체 들을 수 없던 곡들이다. 나성인 음악평론가는 “세계적으로도 완주에 성공한 콰르텟이 몇 안 된다”며 “역사적인 공연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대표적인 교향악단들도 러시안 레퍼토리를 공연 프로그램으로 골랐다. 경기필하모닉은 다음달 8~9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서곡’을 시작으로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의 대표 레퍼토리를 무대에 올린다. 객원 지휘자 차웅이 단원들을 이끌며 첼리스트 송영훈과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함께한다.

객원 지휘자 달리아 스타세브스카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도 러시아의 낭만을 선사한다. 다음달 17~18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프로코피예프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하고,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을 피날레로 선보인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가 협연한다.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는 다음달 8일과 11일 예술의전당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을 들려준다.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코프스키, 손정범, 한지호가 협연한다. 지휘봉은 성기선 이화여대 교수가 잡는다.

올해 국내에선 러시아 레퍼토리가 유독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22일까지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진 교향악축제에서도 러시아 음악의 향연이 펼쳐졌다. 전국에서 모인 21개 악단 중 11곳이 러시아 작곡가의 교향곡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내세웠다.

러시아 돌풍은 한국에서만 이는 현상이다. 세계 공연계의 추세를 보면 이례적이다. 클래식 전문 웹사이트 바흐트랙(Bachtrack)이 2019년 한 해 동안 펼쳐진 공연 약 2만500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베토벤 바흐 모차르트 브람스 슈베르트 등 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이 연주 횟수가 많은 작곡가 ‘톱5’다. 뵤른 머서 아메리칸유니버시티 음악감독이 2016~2019년 바흐트랙의 공연 통계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전체 공연 중 78%가 독일·오스트리아계 작품이었다. 러시아 레퍼토리는 10%에 불과했다.

국내에서 러시아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평단에선 민족성이 비슷하다는 점을 꼽는다. 19세기부터 혁명과 세계대전 등을 겪은 슬라브 민족의 슬픔이 우리 고유 정서인 ‘한’과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황장원 음악평론가는 “슬라브 민족과 우리 민족의 정서가 비슷하다”고 했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듣는 순간 상념에 젖어들 수 있는 극적인 선율이 우리 정서와 조화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작품의 직설적인 감정 표현이 인기 요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러시아 작곡가들은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을 은유하지 않고 극적으로 곡을 전개한다. 덕분에 클래식 입문자도 작품에 담긴 주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 나성인 평론가는 “긴 호흡으로 전개되는 고전 작품과 달리 러시아 레퍼토리는 연주 기교를 극한으로 몰아붙여 관객을 압도한다”고 평가했다. 한정호 음악평론가는 “러시아의 화성 체계가 동아시아 음악 구조와 맞아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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