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재의 스타트업 생생스토리] 스타트업은 가능성에서 출발한다

입력 2022-04-27 17:36   수정 2022-04-28 00:09


네 명으로 이뤄진 야구팀이 신설됐다. 팀의 이름은 ‘사인구단’. 출중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지만, 각자 흩어져 현존하는 팀의 선수로 생활하기보다는 네 명이라도 의기투합해 세상에 없던 이상적인 팀을 만들어보자는 가치관에 리그에 호기롭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출중해도 네 명으론 야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법. 특히 투수, 포수, 내야수, 외야수로 겨우 구성된 수비에서는 그 한계를 처절하게 보여줬다. 공이 날아오면 넓은 구장을 두 명의 야수가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니며 감당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몇 번 경기를 뛰다 결국 체력이 바닥나고 심지어 부상자도 나오기 시작한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로 경기를 뛰다가는 사달이 나겠다고 판단한 나머지 새로운 묘안을 생각했다. 수비에서 모든 공을 다 잡겠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보다 내야와 외야 1루 쪽 날아오는 공만 잡고 다른 타구는 무조건 포기. 투수도 되도록 타자가 1루 방향으로만 치도록 유도하는 작전을 취했다. 선택과 집중을 택한 것이다.

다행히 이런 전략 덕에 처절한 패배 정도는 면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리그를 진행해 가며 경험이 쌓이자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 팀의 목적이 경기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향후 팀이 성장해 아홉 명이 된다면 어떤 프로팀과 경기해도 무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사인구단’에 더 의미 있지 않겠냐는 깨달음이다.

‘승리보다는 우리의 가능성을 보여주자’란 가치관 아래 새로운 전략을 취하게 된다. 상대팀의 특정 유형 타자에게는 절대 진루를 허용하지 않는 수비를 펼친다든지, 스트라이크 아웃을 당하더라도 장타로만 승부한다는 등 비록 팀이 지더라도 ‘사인구단’만의 명확한 장점을 관중에게 각인하게 하자는 전략이다.
새 가치 찾아 도전·모험 감행
이런 기괴한 전략에 관중이 먼저 반응하기 시작했다. 지더라도 색깔 있게 지는 팀에 박수를 보내고 경기 흥미도 높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비록 사인구단은 리그 내내 1승도 거두지 못했지만 관중은 이 팀의 장점을 이해하게 됐고 이들의 가치에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팬도 점차 늘어났다. 그러자 기업들이 이 팀의 스폰서를 자처하며 자금을 지원한다. 이 팀은 자금을 바탕으로 사인구단에서 오인구단으로 충원하며 새로운 가치관을 창조 중이다. 비록 아직 아홉 명의 완벽한 팀을 구성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이기는 경기도 하는 등 조금씩 성장 중이다.

사인구단은 필자가 2년 전 창업한 스타트업 ‘다임리서치’의 창업 분투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스토리다. 다임리서치는 KAIST 연구소 기업이다.
제2의 마켓컬리·배달의민족 꿈꿔
네 명의 선수로 야구팀을 만드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시작이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사업 아이템이나 구성 인력으로 일단 시작부터 하고 보는 것이 스타트업이다. 유통산업에 전혀 경험이 없는 김슬아 대표가 신선식품을 인터넷으로 주문받아 배송하는 마켓컬리를 창업했을 때 기존 유통기업들이 얼마나 황당하게 생각했을까?

기존 대부분 야구단은 팀의 승리란 목표 하나에 가치가 집중돼 있다. 그러나 사인구단은 새로운 가치를 찾아 도전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시장의 새로운 가치를 찾고 그 가치를 사회와 시장에서 인정받아 성장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다. 중국음식점, 치킨집 등 동네 음식가게에서 배달이란 업무가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배달업을 구조화하고 배달을 통해 소상인의 디지털 혁신을 이끈 것이 배달의민족 플랫폼이다. 배달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일반 창업기업과 스타트업의 차이는 벤처 투자다. 대형 모험 자본을 통한 급성장, 즉 ‘스케일업’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핵심이다. 사인구단도 당장의 승리, 즉 매출이나 영업이익보다는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며 투자를 유치해 성장의 발판을 삼았다. 창업 10년 만에 유통 1위 기업으로 급성장한 쿠팡이 대표적인 예다.

대한민국 스타트업은 이제 국가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은 일반인에게 낯설기만 하다. 특히 수도권을 벗어나면 스타트업은 먼 나라 이야기다. 정부 정책이나 스타트업 육성에 기치를 내건 학교에서조차 아직 스타트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지원책이 가득 차 있다.

본 칼럼은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직접 스타트업을 창업하며 좌충우돌하는 필자의 생생한 스토리를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한다. 창업자들과 스타트업 기업에 몸담은 분들, 스타트업에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 정책을 고민하는 정부와 스타트업 교육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한다.

장영재 KAIST 산업및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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