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지방대 태클, 교수는 밥그릇 지키기…반도체과 증원 막는 '3중벽'

입력 2022-06-09 17:27   수정 2022-06-17 18:15


서울대는 지난달 26일 ‘반도체 계약학과’ 신설을 위한 학내 논의에 들어갔다. 2019년 교수들의 강한 반발로 설립이 무산된 지 3년 만이다.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전체 단과대 학장이 참여하는 대학본부 학사위원회에서 학칙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하는데, 교수들 사이에서 “지식의 상아탑인 대학이 특정 기업 취업을 목적으로 하는 학과를 개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대 목소리가 여전히 높기 때문이다.
○교육부 “파격적 대안 준비”
윤석열 대통령이 “첨단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공급해야 한다”며 ‘반도체산업 인재 육성’을 연일 강조하는 가운데 교육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계에선 서울대처럼 학내 반대 여론, 정원 규제 등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수도권 대학의 첨단분야 학과 정원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관련 제도 개선과 교수 채용 등에 필요한 재정 지원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교육부 관계자는 “계약학과 설립 외에 정원을 늘릴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도 “대학에서 반도체 관련 인력을 산업에서 원하는 수준만큼 키워내야 하는데 규제가 걸림돌”이라며 “관계부처와 협의해 지금보다 파격적인 대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반도체학과 등 첨단산업 관련 학과 정원 확대는 만성적인 관련 인력 부족을 호소해온 산업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과제다. 하지만 보수적인 대학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지방대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과 교수들의 ‘보신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수도권정비계획법 등에 따라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서 대학은 수요에 따라 학과 인력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갈수록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인문계열 학과의 정원을 감축하거나 통폐합해야 하지만 관련 교수와 학생들 반발을 우려해 구조조정 없이 정부에 정원 총량만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외국어대는 최근 첨단 융복합학과를 신설하기 위해 어문계열학과 통폐합에 나섰다가 구성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다.
○정치권 대승적 결단 내려야
수도권 대학 입학정원 증원을 제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개정하기 위해 정치권의 대승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령인구 급감으로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운 지방대들은 수도권 정원 확대에 결사 반대를 외치고 있다. 지방대가 고사하면 지방 소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 기반을 둔 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법 개정을 극렬히 반대한다. 올초 국회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에서도 이 내용은 빠졌다. 문재인 정부도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학과 정원 규제 완화를 약속했지만 정치권의 강한 반발에 부딪혀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수도권 대학들은 첨단학과를 유치하는 만큼 전체 정원을 줄이고, 지방대학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위해 한발 양보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의 열악한 재정 상황을 감안해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 등 첨단학과를 설치하려면 전문인력부터 장비 확보까지 많은 돈이 든다. 하지만 정부 규제로 등록금이 14년째 동결되면서 지난해에도 서울 주요 대학 10곳 중 8곳이 적자를 내는 등 대부분 대학이 재정난에 빠져 있다. 이 때문에 산업계와 교육계는 계약학과를 단기 대안으로 지목하고 있다. 계약학과란 기업이 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학과 운영비를 지원하고, 졸업생을 100% 채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학과다. 계약학과는 정원 외로 분류돼 수도권정비계획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수도권에는 고려대와 연세대 등 7개 대학에 반도체 관련 계약학과가 설치됐다.

이 방식도 형평성과 지역 균형 발전을 요구하는 지방대 등의 이해와 맞물려 있어 정부와 기업이 공격적으로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미세공정이 기술발전 한계에 봉착한 만큼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를 극복하려면 기존 공대 체제에서 각 학과가 저마다 연구하고 교육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학과가 함께 교육하고 연구하는 새로운 학문으로 서둘러 재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만수/정지은/최예린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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