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권의 글로벌 프리즘] 국가통계 신뢰도가 국가발전 이끈다

입력 2023-02-19 17:59   수정 2023-02-20 09:30

한 야당 의원이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에게 정책 관련 통계를 물었다. 처칠은 다음 회의 때 답변하겠다고 응수했다. 그는 약속대로 다음날 한 시간에 걸쳐 다양한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회의가 끝난 후 놀란 비서가 물었다. “총리님, 그렇게 복잡한 통계를 어떻게 하루 만에 구하셨습니까. 비서실 전 직원이 달려들어도 6개월은 걸릴 텐데요.” 처칠이 호기 있게 대답했다. “바로 그거요. 야당 의원들이 통계가 틀렸음을 증명하는 데 6개월은 족히 걸릴 겁니다.”

이 일화는 통계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선 통계가 갖는 힘이다. 미심쩍은 문제도 수치로 표시되는 순간 권위를 지니게 된다. 사람들은 쉽게 숫자를 믿고 숫자에 설득당한다. 정치인들이 여론조사를 포함한 통계 숫자에 목을 매는 이유다. 통계라는 용어도 이탈리아어의 ‘정치인(statista)’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중반까지 통계는 주로 정치 관련 자료 조사와 분석에 사용됐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통계의 왜곡, 조작 가능성이다. 통계가 국정평가 지표로 사용되다 보니 통계 왜곡이나 조작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거짓말이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과 통계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영국 총리의 이 말은 오늘날에도 통계의 허구성을 지적할 때 자주 사용된다.

필자는 국가통계의 신뢰도와 국가 발전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는다. 1980년대 후반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소련 경제가 서구에 비해 훨씬 뒤처졌음을 인식하고 경제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나 바탕이 되는 믿을 만한 통계 자료가 없었다. 예컨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실제보다 대폭 축소돼 있었다. 미국과의 핵군축회담에서 사용할 미사일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었다. 결국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한 소련과 위성국가들은 붕괴했다.

오늘날에도 통계의 왜곡과 조작은 독재국가에서 빈번하게 행해진다. 한 경제학자가 2002~2021년 일부 독재국가들의 누적 GDP성장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실제성장률은 발표된 147%가 아닌 76%에 불과함을 밝혀냈다. 지나친 포퓰리즘 정책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정확한 통계를 제공하다가는 처벌받는다. 외국 투자자들은 중국정부가 발표하는 GDP보다 전력소비량, 철도물동량 및 은행 대출 증가율로 구성되는 리커창 지수를 더 신뢰하기도 한다. 권위주의 국가나 계획경제 국가에서 통계를 조작할 동기는 강력하다. 정부가 자의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목표를 달성하는 관리가 승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기업이나 국민의 통계 사용 여부도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 빈곤국일수록 국가통계가 적을 뿐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도 적다. 선진국에서는 개인정보가 활용되는 분야가 증가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보보호 제도도 강화되고 있다.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10억 명은 신원에 관한 공식 기록이 없다. 5세 미만 세계 아동의 25% 이상은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다. 29개 세계 최빈국 중 반 이상이 과거 10년 동안 인구조사를 하지 않았다. 콩고는 1984년이래 한번도 인구조사를 한적이 없다.

통계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언론과 국민이 있을 때 사회는 발전한다. 자의적, 선택적 표본집단에 대한 감시와 비판 속에서 통계는 더 정확해지고 객관성을 지니게 된다. 통계학에 혁명적 변화가 도래하고 있다.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이다. 이미 기상정보, 마케팅 등 실생활뿐 아니라 전문 분야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데이터 혁명시대에 통계기관은 통계 생산 방식의 혁신과 실험통계 도입 등 관리체계 개선이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 정부 통계 조작 의혹의 실체적 진실은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계기로 통계청이 고도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지닌 기관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이다. 통계의 생명은 중립성과 독립성에 있다. 자료는 그 자체에 충실해야 한다(Let the data speak for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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