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공연계 불지른 '파격의 불협화음'…20세기 대표하는 클래식이 되다 [김수현의 마스터피스]

입력 2023-06-29 17:55   수정 2023-06-30 02:46


1913년 5월 29일.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극장에서 폭동(暴動)이 일어났다. 공연 중에 관객들이 이토록 폭력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객석 곳곳에서 고성과 욕설이 쏟아졌고, 공연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는 사람과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도 혼란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공연을 둘러싼 생각은 저마다 달랐으나 한 가지는 모두가 공감했다. 지나치게 난해하고 파격적이었다는 것이다. 선율은 소름이 돋을 것 같았고 리듬은 불편할 정도로 신경을 긁었다. 불협화음은 끝없이 이어졌다. 악상은 극도의 긴장감을 유발할 만큼 극단적으로 표현됐다. 춤도 문제였다. 도저히 발레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괴한 몸짓이 무대를 채웠다.

소동의 주인공은 공연 역사상 최대 스캔들을 일으킨 명작, 이고리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에 바츨라프 니진스키의 안무가 더해진 발레 ‘봄의 제전’ 초연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무용수가 등장하기 전부터 오케스트라가 만들어내는 복잡한 음향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객의 참을성이 한계에 도달할 것은 극의 내용이 드러났을 때였다. 신에게 바치기 위해 한 소녀를 제물로 간택하고 제단 앞에서 이교도적 의식을 치르는 야만적인 장면이 펼쳐지자 카오스(대혼란)에 빠진 관객들은 격분하며 폭언을 퍼부었다.

아수라장이 된 당시 상황은 스트라빈스키의 자서전에도 생생히 묘사돼 있다. “시작부터 사람들이 불만을 드러냈다. 누군가는 내 뒤에서 ‘닥쳐’라고 외쳤다. 공연에서는 조소가 터져 전주의 몇 마디만 (제대로) 들었을 뿐이었다. 정말 진절머리가 났다. 고립돼 있던 시위 행위는 곧 연대를 불러일으켰고, 마침내 반대 시위가 일어나서 금세 두려울 만치 큰 소동이 됐다.”

작품이 진가를 인정받은 건 그로부터 1년 뒤다. 작품에 대한 강한 믿음을 지녔던 그는 1914년 무용을 제외한 순수 교향악으로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리면서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 ‘봄의 제전’은 클래식 음악계에서도 발레계에서도 환영받는 작품이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 최정상급 악단부터 지역 오케스트라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관현악 작품으로의 ‘봄의 제전’을 무대에 올린다. 발레 공연도 마찬가지다. 1921년 레오니드 마신의 새로운 안무가 등장한 이후 국제적 권위의 안무가들이 끊임없이 작품을 재해석하면서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

특히 ‘20세기 최고의 음악’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스트라빈스키의 머릿속에 어떤 영감이 섬광처럼 번뜩이는 것에서 비롯됐다. 1910년 그의 첫 번째 발레 음악인 ‘불새’ 작곡을 마무리할 즈음에 문득 ‘이교도들이 봄을 예찬하고 풍요로움을 빌기 위해 신에게 살아 있는 처녀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을 떠올렸다고 한다. 5관 편성의 대규모 관현악을 사용한 ‘봄의 제전’은 2부로 나뉜다. 1부 ‘대지에 대한 경배(8곡)’는 낮을, 2부 ‘희생제(6곡)’는 밤을 표현하며 대비를 이룬다.

작품은 신비로운 음색의 바순 독주가 인상적인 서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악곡 ‘봄의 전조-젊은 남녀의 춤’에서는 현악기의 강렬한 스타카토(각 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와 악센트(특정 음을 세게 연주), 불규칙한 리듬이 극한의 불안감을 유발하면서 봄의 축제를 알린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유괴의 유희’에서는 팀파니의 성대한 울림과 관악기의 불안정한 도약 진행이 기이한 분위기 속에서 끝없이 춤추는 소녀들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표현한다.

플루트의 트레몰로(한 음을 빠르게 되풀이하는 연주)와 클라리넷의 유려한 선율이 잠시 평온을 안기는 ‘봄의 론도’를 지나면, 트럼펫과 현악기의 악상이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경쟁 부족의 의식’이 이어진다. 이내 바순·현악기의 명료한 리듬, 튜바의 묵직한 울림이 박진감을 만들어내는 ‘성자의 행렬’과 정적인 선율로 짧은 쉼을 건네는 ‘대지에 대한 찬양’이 연이어 연주된다.

1부의 끝을 맺는 건 ‘대지의 춤’. 글리산도(넓은 음역을 빠르게 미끄러지듯 연주), 스포르찬도 등으로 다채로운 음향이 채워지는 가운데 호른의 장대한 선율이 극을 이끌면서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2부는 플루트와 클라리넷의 스산한 선율이 어두운 밤을 알리는 서곡으로 문을 연다. 다음은 ‘젊은이들의 신비한 모임’. 묘한 색채의 현악기 피치카토(현을 손끝으로 튕겨서 연주), 반음 간격을 두고 동시에 움직이는 독특한 선율이 기괴한 분위기를 드리운다. 제물로 바쳐질 소녀를 간택하는 시간이다. 휘몰아치는 악상, 급변하는 리듬, 타악기의 강렬한 연타가 극한의 공포를 유발하는 ‘선택된 여자에 대한 찬미’를 지나면 명징한 리듬 표현으로 주술적인 분위기를 살려내는 ‘조상의 소환’이 연주된다.

뒤이은 ‘조상의 의식’에서 현악기 피치카토와 트레몰로, 잉글리시 호른의 기묘한 선율, 트럼펫의 직선적인 울림이 긴장감을 고조시키면 광활한 에너지를 분출하는 ‘희생의 춤’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 약음기를 낀 트롬본과 피콜로, 클라리넷 등이 날카롭게 쏟아내는 원시적인 색채, 타악기의 격렬한 연타에 집중한다면 한 소녀가 신에게 바쳐질 때의 참혹함과 비극적인 정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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