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예타 무력화'…올해만 44조

입력 2023-11-26 18:37   수정 2023-11-27 02:31


정치권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앞다퉈 대규모 선심성 지역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예타) 없이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신공항 건설, 철도 지하화 등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의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을 특별법 제정 등을 통한 예타 면제·우회로 줄줄이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지역 표심에 혈안이 된 정치권 때문에 재정 낭비를 막는 ‘안전장치’인 예타가 무력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대구경북(TK)신공항 건설(2조6000억원), 대구~광주 달빛고속철도 건설(11조3000억원), 서울지하철 5호선 김포 연장(3조원) 등 정치권이 올해 예타 면제나 우회를 통해 추진하는 재정 사업은 명시된 사업비 기준으로 총 43조8880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업비를 적시하지 않은 사업을 합치면 실제 규모는 50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예타는 대규모 재정 사업을 추진하기 전 사업 비용 대비 편익을 평가하는 절차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면서 국가의 재정 지원 규모가 300억원 이상인 신규 사업은 예타를 받아야 한다. 다만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국책사업은 예타 면제가 가능해 선거철이면 정치권에서 이를 근거로 면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예타 면제 주장에는 여야가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경제재정소위에서 서울지하철 5호선을 경기 김포까지 연장하는 사업의 예타를 면제하는 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경남 창원이 지역구인 김영선 국민의힘 의원은 같은 날 창원 천안 청주 등 인구 50만 이상인 비수도권 광역교통시설 확충 사업에 예타를 면제하는 내용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예타를 면제하거나 우회하는 법안은 이달 들어서만 다섯 건 발의됐다.
1호선 지하화·동남권 광역철도 여야, 특별법 앞세워 '예타 우회'
총선 앞두고 예타 면제 밀어붙여…사업비 규모도 제대로 제시 안해
정치권은 주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또는 우회를 시도하고 있다. 이미 가덕도신공항(13조7000억원), 대구경북(TK)신공항(2조6000억원) 등 대형사업이 이 같은 방법으로 예타를 ‘패싱’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경기 수원시를 지역구로 둔 김진표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수원 군 공항 이전 및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수원시에 있는 군 공항을 화성으로 이전하면서 민간공항 신설을 포함한 경기남부통합국제공항을 건설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군 공항 이전과 별개로 민간공항을 신설하는 데만 사업비 1조243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 법안은 신속하고 원활한 사업 추진을 이유로 예타 면제 조항을 담았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서울 용산구)은 14일 ‘철도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개발에 관한 특별법’을 대표 발의했다. 정부가 지상철도 부지를 사업시행자에게 현물출자하고, 사업시행자는 채권 발행을 통해 사업비를 마련한 뒤 개발된 상부 구도심 공간을 매각해 투자비를 회수하는 내용이다. 국가가 직접적으로 재정을 투입하지 않기 때문에 예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이유를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약으로 내세운 경인·경부·경원선 지하화(23조8550억원)를 뒷받침하는 법안이다.

예타 면제를 주장하면서 사업비 규모를 제시하지 않은 특별법도 다수다. 15일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철 1호선 등 도심 지상철도 지하화를 위한 특별법’, 민홍철 민주당 의원이 24일 발의한 ‘동남권순환 광역철도 건설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등이다. 이 의원의 지역구는 1호선이 지나는 서울 구로구, 민 의원의 지역구는 동남권순환 광역철도 사업의 영향을 받는 경남 김해시다. 이외에 ‘노후도시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올해 3월) ‘남해안권 개발 및 발전을 위한 특별법’(5·6월) ‘석탄화력발전소 폐지지역 지원에 관한 특별법’(6월) 등이 해당 지역 활성화를 명목으로 국비 투입에 대해 예타 면제 조항을 담고 있다. 봇물처럼 터지는 정치권의 예타 면제 요구에 담당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일일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표심에 급급한 정치권이 예타 면제를 밀어붙일수록 국가재정은 막대한 부담을 안게 된다. 가뜩이나 세수 부족으로 재정 건전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한 번 시행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국책 사업은 재정의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이런 와중에 재정준칙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1099조6000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66조1000억원 불어났다. 정호용 국민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타 면제 사업도 최소한의 경제성 분석이나 비용편익 분석을 받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사후 경제성 분석을 통해서라도 사업을 주도한 사람들의 정치적 책임을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허세민/황정환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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