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XXX"…'비속어 詩'로 문단에 던진 폭탄

입력 2024-01-05 18:43   수정 2024-01-06 01:15

“XXX… /얼마나 더 바라야 제 소원 들어주실래요 /죽여 달라니까요… 돌연사를 바란다고요…”

저주와 비속어가 난무하는 이 문장은 박참새 시인(29·사진)의 시 ‘창작 수업’의 첫 구절이다. 등단을 준비하는 시 속 화자는 “더럽게 쓰고 싶었다”며 이렇게 쓴 습작을 제출한다. 창작 수업의 선생은 “감상이 지나치고 감정이 질척댄다”며 절제할 것을 권한다. 화자는 당돌하게 대꾸한다. “ㅋㅋ 웃겨 정말”

연초부터 적나라한 언어와 파격적인 형식으로 기성 문단의 아성을 두드리는 작가가 나왔다. 최근 제42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박참새 시인이다. “활화산 같은 언어가 페이지를 뒤덮는다”(이수명 시인) 등의 심사위원 평가를 받으며 경쟁자 250여 명을 제치고 수상했다.

데뷔 시집 <정신머리>를 출간한 박 시인과 서울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깡패처럼 제멋대로 쓰고 살렵니다”라는 ‘까칠한’ 수상 소감과 달리, 실제로 그는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운 도전자의 자세로 답변을 이어갔다. “운과 성실함이 맞물린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제 겨우 한 발 뗐을 뿐이니, 수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신머리>에 수록된 55편의 시에는 기성 권위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는 화자가 등장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의 싸움에서 승산은 희박하다. ‘내가 나의 아군이라면’이란 시집의 자서(自序)가 암시하듯, 본인 스스로도 자신 있게 ‘아군’이 되지 못한 상태다. 잔뜩 위축된 상황에 놓인 화자는 “내가 오로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유일한 작업은 그 집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되뇐다.

박 시인은 정식 등단 이전부터 문학계에서 입소문을 탔다. 2022년 출간한 대담집 <출발선 뒤의 초조함>은 미등단 작가 책으로는 이례적으로 초판 3000부가 완판되며 증쇄에 들어갔다.

박 시인은 ‘제멋대로 했던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정신머리>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저 자체인 것 같아요. 아직 세상을 향해 줄 수 있는 거대한 메시지도 없고. 문학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큰 다짐도 없죠. 그저 시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정신머리 없는’ 시집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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