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철의 딜 막전막후] '불패 행진' 공모주 시장의 불편한 진실

입력 2024-03-26 18:44   수정 2024-03-27 00:33

마켓인사이트 3월 26일 오후 5시 35분

‘수요예측 첫날, 공모가 상단보다 30% 높은 가격에 질러라.’

지난해 6월 말 기업공개(IPO) 수요예측 기간이 2영업일에서 5영업일로 늘어난 이후 기관투자가 사이에 돌고 있는 ‘묻지마 투자’ 지침이다. ‘초일가점’ 혜택을 최대한 누리기 위한 방편이다. 초일가점은 첫날 또는 이틀째 참여한 기관에 더 많은 공모주 물량을 배정하도록 하는 제도다.

이렇게 제도를 바꾼 건 공모가를 산정하는 수요예측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올해 진행된 IPO 수요예측에서 기관 주문은 대부분 둘째날에 마무리됐다. 시간을 들여 기업을 분석하기보다는 기관 사이에서도 무조건 높은 가격에 지르는 ‘묻지마 청약’을 부추기고 있다는 얘기다. 공모가에 아무리 거품이 끼더라도 상장 첫날 무조건 수익을 안겨주는 시장 왜곡 현상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상적으로 결정되는 공모가
요즘 공모가 거품은 전례 없는 수준이다. 지난달 진행된 오상헬스케어 수요예측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회사가 제시한 공모가 희망가격(1만3000~1만5000원)을 무색하게 하는 청약이 쏟아졌다. 수요예측 둘째날에 이미 게임은 끝났다. 공모가 상단 대비 30% 이상 높은 2만원에 주문이 대거 몰려들었다. 2만원 이상을 적어낸 기관이 전체 참여 기관의 80%를 넘었다. 대다수가 공모주 물량을 더 받으려는 ‘허수 주문’이지만 모두 똑같이 주문을 낸 탓에 최종 공모가는 2만원으로 산출됐다.

정상적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한 일부 기관투자가는 지나치게 높은 공모가에 당황해야 했다. 그동안 수요예측에서 흥행하더라도 관행적으로 최종 공모가는 상단 대비 최대 20% 수준에서 결정됐기 때문이다. 일부 기관은 스스로 2만원을 적어 내놓고 설마 그 가격에 공모가가 정해질지 상상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진 공모가로 진행된 개인투자자 대상 일반 청약에 5조원 넘는 뭉칫돈이 몰렸다. 업종을 불문하고 상장하면 상장 당일 최대 400%까지 급등하는 주가를 지켜본 개미들도 앞다퉈 주문을 넣은 결과다. 실제 오상헬스케어 주가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최대 125% 높은 4만5000원까지 상승했다. 그 이후 급락세를 거듭, 26일 2만1150원까지 떨어졌다.
뒷전으로 밀린 수요예측 개선
공모가가 상단보다 30% 높아져도 차익을 낼 수 있다는 경험은 기관들의 ‘묻지마 투자’ 전략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오상헬스케어 이후 엔젤로보틱스, 아이엠비디엑스 등의 공모가도 상단 대비 30% 이상 높게 책정됐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수요예측 단계가 완전히 망가졌는데도 상장 직후 주가가 이상 급등하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비정상이 비정상을 낳고 있다”고 꼬집었다.

금융감독원도 수요예측 제도와 관련된 문제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각양각색의 채널을 통해 수요예측과 관련된 문제점을 수집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뒷전이다. 지난해 ‘파두 사태’ 이후 꾸려진 IPO 주관업무 혁신 태스크포스(TF)팀 업무부터 마무리한 뒤 수요예측 제도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금감원이 당분간 시장의 자정 작용을 기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상장 첫날부터 주가가 하락하는 공모주가 나타나면 이른바 ‘학습효과’를 통해 시장이 다시 정상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6월 말 수요예측 제도를 바꾼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제도에 손을 대기엔 부담스러울 것이란 말도 나온다.

문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후폭풍은 점차 누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번 깨진 신뢰를 다시 회복하기 위해선 더 큰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공모주 시장을 더 이상 방치했다간 한국 주식시장 전체의 신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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