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10년간 경쟁과 혁신 거부한 가구업체들

입력 2024-04-08 18:12   수정 2024-04-09 00:50

“이대로 천년만년 꼭!”

분양 아파트에 설치되는 ‘빌트인 가구’ 입찰 가격을 담합한 가구업체 직원들이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 일부다.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로 지난 7일 밝혀진 해당 담합 사건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현대리바트, 한샘, 에넥스 등 31개 가구업체가 무려 10년(2012~2022년)간 담합해 대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GS건설 등 24개 건설사와 일반 소비자들이 직·간접적 피해를 봤다. 가구업체들이 담합으로 올린 관련 매출만 2조원에 달한다. 공정위가 이외 70개 건설사의 특판가구 발주물량을 추가 조사 중이어서 피해 규모는 더 커질 전망이다.

이번 조사로 가구업체들은 총 931억원의 적잖은 과징금을 내게 됐다. ‘시장경제의 암’이라고 불리는 담합이 여전히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쓴맛이 가시지 않는다. 시장경제에서는 경제주체들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며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혁신과 소비자 후생이 증가한다. 담합은 그 정반대다. 담합 참여자들은 ‘짬짜미’를 통해 자유로운 경쟁을 억제하면서 새로운 도전자의 진입을 막는다. 혁신은 막히고 소비자 후생도 낮아진다.

담합 행위가 시작된 2012년은 위축됐던 건설경기가 살아나고 아파트 건설 물량이 증가하던 때다. 생사기로에 놓여 있던 중소형 가구업체가 시장에 참여하기 시작하자 담합 업체들은 입찰 가격을 사전 조율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출혈 경쟁은 최소화하면서 신규 경쟁자의 진입을 막았다. 이들은 단체 대화방에서 “입찰 완료”를 외치고 “짝짝짝” 박수를 치며 “서로 도우며 신뢰를 쌓아가자”고 했다. 이들의 ‘상부상조’로 인해 시장원리가 부당이익으로 대체된 셈이다.

이 같은 담합의 폐해는 거래관계상 직접 피해자인 건설사에 그치지 않았다. 아파트 수분양자를 비롯한 일반 소비자도 영문도 모른 채 피해를 봤다. 담합으로 발생한 부당한 마진이 아파트 분양 원가를 끌어올렸고, 소비자들은 경쟁하지 않고 만든 질 낮은 제품을 선택권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들의 담합 기간은 국민을 우울하게 했던 아파트값 폭등기와 일치한다. 공정위는 담합 때문에 수분양자들이 더 낸 분양가를 전용면적 84㎡ 기준 약 25만원으로 추산했다. ‘분양가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하면 피해는 금액 이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했다고 봐야 한다.

한샘은 공정위 조사 결과가 발표된 직후 “구시대적인 담합 구태를 철폐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기업으로 거듭나겠다”고 공식 사과했다.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직 적발되지 않은 담합까지 포함해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보상할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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