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사람들에게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질서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면, 도시는 만남을 통해 기회를 주고받게 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길을 가다 마주치는 사람과 길 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은 사람들을 기회로 이끌어 주는 매개체다. 그래서 도시는 보고 싶은 것의 연속이며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널려 있는 것이 좋다. 도시 공간에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과 ‘서울로 7017’ 같은 산책로는 바쁜 일상 속 만남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의 질서를 느끼며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주는 장소인 셈이다. 일상을 벗어나 교통의 방해를 받지 않고 마음껏 걸으며 자연을 즐기도록 십여 미터 넘는 하늘 위 고가도로에 녹지 공간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서울로가 모방한 하이라인도 프랑스 파리의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를 벤치마킹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1859년에 만들어져 파리와 파리 근교를 잇던 물자수송용 고가철도가 그 기능을 다하고 1969년 폐쇄돼 철거가 논의될 때, 인근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을 새롭게 짓는 계획이 수립되면서 폐쇄된 철도를 보행 녹지 공간으로 개발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당시로서는 세계적으로 사례가 없어 미친 짓으로 여겨지며 돈만 낭비할 것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민간인과 지방자치단체, 전문가 단체와 건축가 등이 하나로 똘똘 뭉쳐 추진해 결실을 봤다.

두 사례가 찬반 갈등을 겪으며 오랜 시간 고민하고 어렵게 추진된 것을 보면, 서울로는 현상설계를 통해 너무 쉽게 아이디어를 적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가도로와는 다르지만 서울에는 역사적 도시의 기억을 느낄 수 있는 성곽길이 잘 조성돼 있다. 도심 곳곳에서 접근이 가능하며, 돌담과 나무가 어우러져 도심 속에서 숲길을 걷는 재미를 준다. 평지에 있던 유럽 성곽이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대부분 헐려 링스트리트라고 불리는 불러바드 도로로 치환돼 사라져 버렸다면, 우리나라 성곽은 자연 지형과 함께 남아 도시민에게 이색적인 길을 걷게 하는 좋은 공간이다.
도심 공간은 기회의 공간이고 흥미롭지만 번잡하며 만남에 지친 사람들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 도심 속에서 다른 시간대를 느끼게 하며 자연과 함께 끝없이 이어질 듯한 산책로는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아무 생각 없이 터벅터벅 걷게 해준다.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오래전부터 알아온 것을 바라보는 듯한 친근함 속에서, 새로운 나를 찾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게 해주는, 내 옆에 숨겨진 마법 같은 공간이다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