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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반복될까"…19세기 개항과 크립토 혁명의 '닮은 꼴' [한경 코알라]

입력 2025-03-05 09:50   수정 2025-03-05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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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흐름은 반복된다 - 마크 트웨인</i>

오래된 질서가 유지되던 금융의 세계에 크립토 이양선(異樣船)이 나타났다.

나무로 만든 돛단배만 존재하던 19세기 동아시아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철갑 증기선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 온 양이(洋夷)들의 존재를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2024년 비트코인 현물 ETF와 트럼프 당선, 그리고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제도권 금융이 더 이상 크립토를 외면할 수 없게 했다.

이상하게 생겨 황당선(荒唐船)이라고도 불린 이양선(異樣船)은 처음에는 식량과 친교를 요구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규모 교역과 개항을 요구했다. 국가의 지원을 받아 압도적인 성능을 지닌 무기를 실은 군함들이 뒤따랐고, 양이(洋夷)들이 일으킨 요란, 즉 양요(擾亂)가 일어났다.
전통 금융의 관점으로는 납득이 어려운 ‘코인’들은 처음에는 초기 코인 공개(ICO)나 탈중앙화 금융(DeFi) 등에 쓰이며 투기나 도박 취급을 받았지만, 2024년 미국 증시에서 공전의 히트를 하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존재감을 발휘했다. 기존 은행 망에 비해 압도적인 편의성을 가진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고, 새로운 미국 정부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미국 의회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의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입법이 빠르게 추진 중이다.

이처럼 서양에서 출발한 크립토 함대가 동아시아 3국의 금융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이 19세기 동아시아 3국의 개항 과정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자세히 알아보자.

청나라는 일찍부터 서방과의 교류가 있었으나, 무역은 특정 지역에서 정부가 허가해 준 공행(公行)이라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했고 외국인의 내륙 진출은 엄히 금했다. 청나라의 상류층은 중화사상에 깊이 물들어 외세를 배척했고, 건륭제는 영국 사절단에 “천조(天朝)는 만물이 구비되어 있어 외국 물건이 필요 없다”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한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고 "중체서용(中體西用)"을 표방하며 양무운동을 벌이게 된다.

중국은 한때 비트코인 채굴의 대부분을 담당할 정도로 가상자산에 친숙했지만, 중국 중앙정부는 2013년경 금융기관의 비트코인 거래, ICO, 이어 비트코인 채굴마저 전면 금지하는 등 강력한 금지 기조로 돌아섰다. 시간이 지나 가상자산의 존재가 커지자 중국은 홍콩에서의 가상자산 거래 및 관련 영업을 허용하고, 디지털 위안(CBDC) 개발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 페리 제독의 ‘쿠로후네(黑船)’가 나타났을 때에도 막부는 새로운 위협에 대항할 여유가 없었다. 일본은 큰 저항 없이 항구를 개방했고, 화혼양재(和魂洋才)를 표방하며 대대적인 국가 개혁을 시작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를 앞당긴다.

일본은 세계 최초로 2016년 자금 결제법 개정을 통해 비트코인을 합법적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고, 2022년에 스테이블코인 가이드라인을 냈으며, 경제산업성은 2023년에 자민당이 펴낸 ‘Web 3.0 백서’를 공식 승인했다. 초장기 불황과 저성장에 시달리던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진흥할 방법이 절실했고,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산업의 국가적 육성을 그 방법의 하나로 택한 것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JPYW라는 스테이블코인이 이미 유통되고 있고, 미쓰비시(MUFG), 미쓰이스미토(SMBC), 미즈호 등 대형 은행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선은 낯선 세계와의 교류에 가장 강렬하게 저항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는 큰 피해를 보았지만 어쨌든 승리했고, 조선의 지배층에는 "정학(正學)인 성리학을 수호하고 사학(邪學)인 서학을 배척한다"라는 위정척사(衛正斥邪) 사상이 득세했다. 개화파들이 동도서기(東道西器)를 주장하며 일으킨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로 끝났다.

우리나라는 2017년 말과 2018년 초 정부가 내놓은 ‘긴급대책’과 2021년 특금법 개정으로 ICO가 금지되고 법인과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거래소 접근이 차단되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암호화폐 거래소 전면 폐쇄’까지 검토했으며, 그로 인해 전 세계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기도 했다. 2017년을 전후해서 국내 대기업 다수가 자체 ‘메인넷’을 만들고 블록체인 사업을 검토했으나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선과 청, 왜는 서양의 문물과 서학(西學)에 저항했지만, 실제로 그 저항을 무력화한 것은 서양의 증기선과 강력한 함포였다. 교류를 청한 것은 서양의 선교사들과 상인이었지만, 그들의 뒤에는 제국주의 열강 정부가 파견한 당대 최강의 해군이 있었다.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조선이 신미양요와 병인양요에서 큰 피해를 보고, 에도 막부가 싸울 생각도 못 한 채 개항을 서두른 이유는 미국과 영국이 옳고 동아시아 3국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강압적인 개방 요구에 맞서 싸울 무기와 물자의 부재, 더 나아가 그것을 생산할 산업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나무배와 화승총, 그리고 위정척사의 정신은 틀리지 않았지만 앞선 기술로 만들어 낸 철갑 증기선의 함포를 이기지 못했다.

‘크립토 프레지던트’ 트럼프는 1월에 취임한 이후 빠르고 강력하게 가상자산에 힘을 싣고 있다. 미국이 지금부터 ‘디지털 자산 황금시대’에 진입한다고 선언한 백악관의 ‘크립토 차르’는 공식 기자 회견에서 “우리의 목표는 디지털 자산에서 미국의 패권(American dominance)을 확보하는 것이다”라며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패권(US dollar dominance)과 국채 수요에 핵심 역할을 하며, 미 국채 관련 수조 달러 규모의 경제적 활동과 미국 내 금융 혁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말로 미국 정부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할 것을 분명히 밝혔다. 그간 소송전을 통해 미국 내 가상자산 업계의 성장을 강력하게 저지해 온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최근 각종 조사와 소송을 취소하고 있고, 오랫동안 숨죽여 온 미국의 크립토 업체들은 이제 족쇄를 풀고 글로벌 서비스 개발에 나서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와 주정부들은 비트코인 ‘전략준비자산’ 법제화를 추진 중이며, 유럽은 이미 2023년에 가상자산 기본법인 암호자산법(MiCA)과 실무 지침을 완비하고 2024년에 시행했다.

빠르고 강력하고 저렴한 크립토가 우리 지급결제 시장과 금융시장에 ‘교류’를 청해올 날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블랙록, 프랭클린템플턴, 위즈덤트리 등은 가지고만 있어도 자동으로 이자가 붙는 국채 토큰을 발행해 유통하고 있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알아서 잔고가 불어나는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셈이다. 비자(Visa)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고,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페이팔(Paypal) 대표는 며칠 전 페이팔 앱을 통해 비트코인으로 물건을 사는 영상을 게시했다.

이들이 우리 내수 지급결제 시장과 금융시장을 달라고 찾아올 때 우리는 대항할 수 있을까? 우리가 가진 화승총과 나무 돛단배보다 몇 세대는 앞서간 소총과 함포로 무장한 철갑 증기선이 찾아와 시장 개방을 요구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19세기 일본은 우리보다 고작 10여 년 앞서 개항했고, 그것이 일본이 조선을 무력으로 개항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아직도 팩스와 플로피디스크를 버리지 못하고 결재문서에 나무 도장을 찍는다고 알려진 일본은 이미 9년 전에 법 개정을 통해 비트코인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했고, 국가적으로 Web3 산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빅3’ 은행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Project Pax’라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지급결제 사업을 진행 중이다. 본래 뜻은 ‘평화’이지만 주로 ‘제국’을 상징하는 ‘Pax’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눈에 밟힌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앞장서서 대비해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국내 크립토 산업 생태계를 부활시켜야 한다. 지급결제와 금융의 신무기가 싸움을 걸어오기 전에 우리도 신무기를 준비해야 한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나 페이팔 지갑에 우리나라 기업들과 사람들의 자산이 흡수되기 전에 우리나라에서 만든 크립토 서비스 대안이 있어야 한다.

<i>역사는 되풀이되는데 이를 항상 예측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얼마나 경험에서 배울 줄 모르는 존재인가. -조지 버나드 쇼</i>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장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센터장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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