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중견기업 대표가 이혼소송에서 패소해 부인에게 재산분할로 약 1050억원을 줄 상황에 놓였다. 국내 이혼소송에서 1000억원이 넘는 재산분할 판결(하급심 포함)이 나온 것은 지난해 5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례(2심 1조3808억원) 후 처음이다. 판결이 뒤집히지 않으면 재산분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 업체 대표는 보유 지분 중 상당량을 매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재판부는 “피고가 회사를 지금 수준으로 성장시킨 배경에는 회사 설립 초기 원고와 그의 가족의 직간접적 지원이 있었다”며 “가사를 전담하고 자녀를 양육한 원고의 내조 역시 상당한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들 부부의 법정 다툼이 본격화한 것은 3년 전이다. C씨가 2022년 5월 “남편의 가부장적 태도와 외도 등으로 혼인관계가 파탄 났다”며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그가 요구한 재산분할 규모는 약 1600억원(보유 재산의 50%)에 달했다. B씨는 “근거가 없다”며 부인이 주장한 모든 내용을 부인하고 이혼을 거부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C씨 주장대로 혼인관계가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고 봤다. 두 사람이 별거 중이고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는 점 등을 판단 근거로 삼았다. 재판부는 “피고의 부정행위 여부를 두고 이미 부부간 신뢰가 훼손됐다”며 “서로 비난과 대립을 지속하며 갈등이 깊어져 혼인관계가 파탄 났다”고 밝혔다.
이혼의 책임을 두고는 “양측 모두 대등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원고가 남편의 책임을 주장하며 근거로 제시한 외도 등에 대해선 “제출한 증거만으론 피고 때문에 부부 관계가 깨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재산분할과 별개로 원고의 위자료 청구(2억원)를 기각한 이유다.
법조계에선 이번 이혼소송의 결말이 다른 기업 오너들의 대형 이혼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 부부 사례는 이미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어서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6조원대 자산가’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의 이혼소송에는 참고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많다. 권 CVO는 1심에서 심리를 위한 재산 감정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권 CVO가 창업 당시 부인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권 CVO의 부인은 스마일게이트의 공동 창업자이고 회사 설립 후에도 3년여간 등기이사로 경영에 참여했다. 남편이 창업할 때 본가 지원을 이끌어내고 가사에 전념한 C씨보다 부부 재산을 불리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고 볼 여지가 크다는 평가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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