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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출내기들의 ‘여성서사’, BIFF가 주목한 아시아적 정서

입력 2025-09-24 15:25   수정 2025-09-24 15:26



올해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신설한 경쟁부문에선 14편의 작품이 최고영예인 ‘부산 어워드’를 놓고 다툰다. 비묵티 자야순다라, 장률처럼 이미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노련한 감독들의 존재감이 묵직하지만 신출내기들의 도전에도 눈길이 간다. 각본은 조금 성기고, 연출은 조악하더라도 젊은 감독의 시선에선 동시대 아시아 영화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느 주요 국제영화제처럼 BIFF가 공식 경쟁작에 초보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을 세 편이나 올린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아시아 영화’라는 틀로 구분하는 건 다소 피상적인 면이 있다. 세계 인구의 약 60%가 몰려 살만큼 광활한 대륙에 수많은 언어와 종교, 문화적 다양성이 상존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서로 다른 지역에서 만들어진 영화인데도 묘하게 BIFF가 강조하는 ‘아시아적 정서’가 포착될 때가 있다. 올해 공식 경쟁작으로 초청된 이저벨 칼란다 감독의 ‘또 다른 탄생’(원제 Tavalodi Digar)과 유재인 감독의 ‘지우러 가는 길’이 그렇다. 두 여성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여성 서사’를 통해 고립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시대적 풍경 속에 투영했다는 점에서다.



움직이는 詩 ‘또 다른 탄생’

‘또 다른 탄생’은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타지키스탄계 미국인 감독 이저벨 칼란다가 각본부터 연출, 제작, 공동 주연까지 맡아 완성한 영화다. 느린 전개와 장중한 롱테이크로 영화예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가 떠오른다. 러닝타임이 66분에 불과한 장편 치곤 짧은 영화지만, 의도적으로 더딘 호흡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차분한 연출과 멈춘 듯한 이미지들 틈새에 있는 긴장감은 마치 영화를 본다기보단 시를 읽는 느낌을 준다.

영화는 타지키스탄 외딴 산골 마을에 사는 8살 소녀 파라스투가 세상을 깨닫는 이야기다. 소녀의 세계는 저물어 간다. 가부장적 전통의 사회에서 아버자란 존재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 아버지의 공백 속에서 할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있고, 어머니는 점점 더 사회와 고립돼 간다. 어린 딸의 눈을 통해 어머니가 갖는 슬픔, 여성으로서의 고독을 전달하는 점이 영화의 포인트다. 칼란다 감독은 “여자로 산다는 게 무엇이고, 외로움이 여성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음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의 제목을 이란의 시인 포루그 파로흐자드가 쓴 동명의 시 작품에서 따왔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시인 중 한 명이자 이란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으로 거론되는 파로흐자드는 1950~1960년대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는 사회 구조에 저항하고 여성의 욕망과 고통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파격적인 글쓰기로 주목 받았다. 실제로 영화에선 파로흐자드의 시가 파라스투의 어머니 파르빈의 입을 통해 낭송된다. 대사가 거의 없는 파르빈은 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다. 칼란다 감독은 “페르시아와 아랍 문학에서 시인의 목소리가 늘 권위를 가졌던 것을 활용했다”면서 “시가 나오는 장면이 제 영화에서 최고인 부분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미술학도의 리얼리즘 ‘지우러 가는 길’

‘또 다른 탄생’이 현실이란 기반 위에 환상이 스며든 서정시 같다면 ‘지우러 가는 길’은 리얼리즘 소설 같다. 여고생 두 명의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 임신과 미성년자 임신중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인 윤지(심수빈)가 기혼자인 담임선생님과의 불륜으로 임신하고, 이 비극을 되돌리려 하는 게 얼개다. 전개가 화끈하다. 학생과 담임선생님이 그리는 금단의 절절한 사랑 같은 신파는 없다. 로드무비는 아니지만,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윤지가 아이를 지우러 가는 여정으로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는 여러 문제에 포커스를 맞춘다.



작품을 이끌어가는 건 오롯하게 여성의 몫이다. 사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담임 선생님은 종적을 감춘 채로 나타나지 않는다. 임시 담임을 맡아 종종 등장하는 나이 지긋한 남자 교사도 마찬가지로 도움은 커녕 시종일관 무관심하기만 하다. 흔히 책임지는 역할을 부여받고 이따금 구원자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어른 남성의 존재를 지우면서 덜 영글었지만, 삶에 책임을 다하려 고민하고 마침내 자신만의 해답에 이르는 여고생 두 명이 만들어내는 서사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유려한 연출은 없지만 자연스러운 내러티브가 돋보인다. 유 감독이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미술가인 터라 미장센이 눈길을 끌 것이란 예상과 달리 오히려 스토리텔링에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경선(이지원)이라는 캐릭터의 능청스러운 연기를 통해 논쟁적이고 부담스러운 소재를 감싸는 유머러스한 연출의 밸런스도 나쁘지 않다. 유 감독은 “청소년 임신 등 성(性)과 관련한 낙인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책임질 것인가를 짚고 싶었다”면서 “그저 어둡고 진지하기만 한 게 아니라 ‘그런 일도 있었지만 앞으로는 웃으면서 계속 살아갈 거야’라는 이야기하려 했다”고 말했다.



부산=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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