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새해, 한국 반도체는 두 개의 거대한 파도 위에 올라타 있다. 하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운 '역대급' 메모리 슈퍼사이클의 귀환이고, 다른 하나는 자국 우선주의 인공지능(AI) 전략인 '소버린 AI'(Sovereign AI) 열풍이다. 수출 지표와 주식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지만, 이 안에서 위태로운 불균형을 감지할 수 있다. 메모리 호황과 AI 주권 담론 속에서 이들을 뛰게 하는 심장에 해당하는 국내의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는 여전히 시장 점유율 2% 수준의 변방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국가적 화두가 된 '소버린 AI'는 데이터와 신경망 모델의 주권을 지키는 것에서 시작되지만, 그 완성은 '하드웨어 주권'에 있다. 우리만의 언어와 문화를 담은 AI 모델을 구축하더라도, 이를 구동할 두뇌(AI 반도체)를 특정 해외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주권에 불과하다. 진정한 AI 강국은 AI 서비스를 뒷받침할 최적의 '맞춤형 칩'을 설계하고,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때 비로소 달성된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소버린 AI의 전장이 클라우드에서 '온디바이스 AI'로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AI는 거대 데이터센터에만 머물지 않고, 스마트폰, 자동차, 가전, 로봇 등 우리 일상의 기기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소버린 AI는 국가 데이터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내 손안의 AI 주권'을 실현하는 것까지 연결된다. 그 핵심은 보안과 저전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맞춤형 시스템 반도체 설계에 있다.
문제는 현재 국가적 관심과 투자가 클라우드 인프라와 대형 신경망 모델 개발에 쏠려 있어, 반도체 설계(반도체 IP와 팹리스) 분야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능한 설계 기업이 자금난과 인력난에 허덕이다가 사라져 간다면, 우리가 보유한 세계 최고 수준의 파운드리 공정은 결국 외국 기업 설계도만 받아 처리하는 '하청 기지'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2026년의 슈퍼사이클은 분명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주겠지만, 그 행복함에 취해 있을 시간이 없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구조적인 호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국가적으로 메모리에서 벌어들인 자본을 시스템 반도체라는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흘려보내, 장기적인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설계-파운드리-소재·부품·장비'로 이어지는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를 키울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이성현 대표는
서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전기·전자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종합기술원(현재 SAIT)을 거쳐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SoC 개발팀에서 일했다. 2017년 오픈엣지테크놀로지를 창업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자율주행차, 보안카메라 등과 같은 엣지 환경에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시스템반도체 설계자산(IP)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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