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지역 국가들이 원유 생산량을 잇달아 줄이고 있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유조선 운항을 차단하자 원유를 생산해도 저장할 공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번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사드 알카비 카타르 에너지장관은 “걸프 지역 모든 수출국이 조만간 불가항력을 선언하게 될 것”이라며 “몇 주 안에 유가가 150달러 수준으로 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 폭등이 기정사실화하면서 경기 위축과 물가 급등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공포가 세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문제는 이란발(發) 유가 급등으로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JP모간체이스는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미국 물가 상승률은 0.1%포인트 상승하고 경제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도 비슷한 압력을 받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유가 상승이 중국 내 에너지 비용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며 “경제 성장은 정체되고 물가를 끌어올려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전쟁 전 배럴당 60달러 수준이던 국제 유가가 이미 90달러를 넘어섰고, 하루 15만달러 수준이던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용선료가 세 배 넘게 치솟았다”며 “이것만으로 국내 유가는 500원가량 상승 요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전 세계 원유의 3%에 수급 문제가 생겼는데 유가가 50% 상승했고, 오일쇼크 당시엔 약 10%가 타격받았는데 두 배 올랐다”며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세계 원유는 약 20%에 달해 사태가 지속된다면 전 세계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우 전쟁 초기인 2022년 6월 두바이유 가격이 120달러로 치솟자 국내 휘발유 가격은 2144.9원까지 올랐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6일 연 2.50%인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6개월 뒤에도 현재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2% 경제성장률이 전망되는 만큼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양할 필요가 없어졌고, 반도체 분야만 호황인 K자형 회복이어서 금리를 인상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작년 11~12월 0.7~1.0% 증가세를 나타낸 전산업생산은 1월 1.3% 감소했다. 건설투자(건설기성)도 1월 11.3% 급감했다.
문제는 이란 전쟁으로 상황이 악화했다는 것이다. 유가 급등으로 물가 상승 가능성이 높아진 동시에 경기 위축 우려도 커졌다. 여기에 외환시장과 주택시장도 여전히 불안해 한은이 금리를 낮출 수도, 높일 수도 없는 딜레마적 상황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에 따라 1970년대 오일쇼크 같은 상황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커지고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여파로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배럴당 3달러이던 유가가 12달러로 급등했다. 이듬해 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3%를 기록했고, 경제성장률은 7.7%로 전년(14.9%)에 비해 반 토막 났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정영효/김대훈 기자 selee@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