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영화는 음악으로 명성을 쌓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까닭에 음악 배경의 비중이 크지만, 삶을 구원한다는 환상성을 탈피해 연인 또는 부부 관계를 풀어가는 공통점이 있다.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한 <웃음 뒤에 우리>는 음악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가 배경의 무대로 깔리되 역시나 ‘부부’에 초점을 맞춘 사연을 중심에 놓는다.

근데 부부라고 해도 될까? 알렉스(윌 아넷)와 테스(로라 던)는 이혼 얘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서로 떨어져 살며 두 아이를 돌보기로 합의했다. 새로 집을 마련한 알렉스는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삶이 어찌나 외롭고 상실감이 크던지 술 한잔 걸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것 같아 발 길 닿는 대로 술집에 들어가려다 입장을 제지당한다.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이 있는 술집이라 입장료가 있어야 했던 것. "돈을 내지 않고 들어갈 방법은 없소?" "공연을 한다면 공짜요." 그렇게 처음 올라간 무대에서 자기의 별거 사실을 소재로 5분 정도 떠벌렸을 뿐인데 반응이 좋았다. 관심받으니 제2의 인생을 사는 것 같았고, 자신감도 얻어 어떻게 하면 가족과 결합할 수 있을까 궁리했다.

인생은 대개 거기서 거기다. 테스만 해도 한때 잘 나갔던 미국의 국가대표 배구 선수였다. 그런데 지금은? 남편 알렉스와 불화는 없는 것 같아도 감정적 거리는 멀어졌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물며 테스와 같은 인생의 하이라이트도 없는 알렉스는 어떨까.
스탠드업 코미디는 보잘것없는 삶에 다른 가치를 더해줬다. 쓸쓸함과 덧없음으로 귀결된 결혼 생활의 경위를 가감 없이 전하되 유쾌한 음성으로 코믹하게 변주하니 브라보! 무대 주변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쓰다 만 편지처럼 흐지부지되어버린 삶을 다르게 볼 수 있게 되니 공백으로 남은 칸을 다시 채울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 무대에 오를 때 카메라는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으로 잡아 알렉스가 느낄 부담감을 관객에게도 전가했다. 가족과 떨어져 집에 돌아와 어색한 고요 속에서 자기 삶이 망가진 걸 슬퍼할 때도 그랬다. 그의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불편했던 카메라는 공연의 반응이 좋아지자 핸드헬드로 새가 날듯 자유롭게 그의 감정을 풀어줬다.

그래서 공연이, 예술이 알렉스를, 그의 삶을 구원하는가. 실은 인생 자체가 스탠드업 코미디와 비슷한 면이 있다. 무대 뒤라 할 수 있는 삶에서 겪는 비애를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감추고 표백하려 웃음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신호를 주어 자존심을 지키고 아픔을 유예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까, 스탠드업 코미디와 같은 예술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지 구원의 결과는 아니다. 예술에 인생을 담보하여 생기는 후폭풍은 종종 개인을 망가뜨리는 걸 넘어 가족 전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생기는 딜레마를 알렉스도 겪게 되는데 우연히 그들 부부 관계를 소재로 한 공연을 테스가 보게 된 게 원인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하고, 불특정 다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아이러니. 영화는 극 중 알렉스와 테스의 부부 관계의 장력을 두고 서로의 등만 바라보는 사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알렉스가 관계를 회복하겠다며 배구 선수 시절 스파이크하는 순간을 뒤에서 찍은 사진을 테스에게 보여주자 화를 낸 이유다.

알렉스는 테스에게 의미 있는 시절의 사진을 간직하는 것이 그녀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했는데 갭이 생긴 관계의 거리를 더 멀게 했다는 자책감이 그를 다시 수렁에 빠뜨렸다. 그때 구원처럼 나타난 스탠드업 코미디… 는 아니고 이 영화를 연출한 브래들리 쿠퍼가 분한 알렉스의 친구 볼스가 눈을 확 뜨게 하는 조언을 들려준다.
볼스 또한 연극을 하는 예술가이자 아내와의 관계가 위태로워 혼자 된 알렉스를 보며 나름의 해결책을 찾으려 두문불출하는 중이다. 워낙 괴짜 스타일이라 제 한 몸 간수도 못 할 거 같은 볼스가 테스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더니 알렉스에게 한다는 소리가, 왜 뒷모습이야? 앞모습이 보이게 걸어야지.

그 얘길 듣는 순간, 알렉스에게 깨달음의 종이 머릿속에 울린다. 알렉스는 테스의 뒤만 보며 그녀를 이해하려 했다. 그건 테스도 마찬가지다. 둘 다 상대의 감정을 더 이해하려 하고 거기서 공감의 접점을 찾는 것에 소극적이었다. 상대가 나에게 더는 관심이, 애정이 없는 것 같다고 지레짐작해 가장 손쉬운(?) 별거를, 이별을 입에 담았다.
뒤를 본다는 건 상대가 겪는 불행을 보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면에서 대면해야 무슨 고민인지 파악할 수 있는 건데 늘 뒤에서 상대의 등만 바라봤으니, 관계의 거리가 줄어들 리 없었다. 볼스 왈, 부부 관계는 개인이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둘이 함께 불행해지는 거다. 알렉스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결국, 혼자만 편해지는 방식이었다.
브래들리 쿠퍼는 예술이 삶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세 편의 연출작을 거치면서도 브래들리 쿠퍼의 주제 의식은 한결같다. 망가진 삶과 관계의 개선을 예술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 <웃음 뒤에 우리>에서는 그에 더해 당사자들이 정면으로 부딪쳐 관계를 회복하고, 멀어진 감정을 좁히려 더욱 노력하라고 조언한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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