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9’가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럼 대박인데…!”며칠 전 한 기자가 건넨 이야기에 소름이 돋았다. No. 29는 곡 제목이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0일 발표한 새 앨범 ‘ARIRANG’에 들어 있다. ‘댕~’ 하는 범종(성덕대왕신종) 소리만 1분39초 동안 지속되는 파격적 트랙이다. 이런 짧은 음향이 빌보드 핫100에 오른다면 분명 ‘해외 토픽’ 감이다.
그런데 올라도 문제다. 세계 음악 팬이 이 트랙에 왜 No. 29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궁금해할 것이다. 실은 이 ‘29’라는 숫자는 알려지지 않는 게 낫다. 성덕대왕신종은 더 이상 ‘국보 29호’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 지정번호 제도는 5년 전인 2021년 폐지됐다. 이제 ‘국보 1호 숭례문’이 아니라 ‘국보 숭례문’이 맞고,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이 아니라 ‘국보 성덕대왕신종’이 맞다. 이건 권고사항 정도가 아니다. 2021년 11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고시에 따라 지정번호는 삭제, 폐지됐다. 폐지된 이유도 물론 있다. 가치 순위가 아니라 행정 편의로 붙인 숫자가 오해를 부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제 잔재라는 견해도 작용했다. 그렇게 겨우 지운 번호가 이번에 BTS 때문에 ‘강제 부활’될 판이다.
전후 사정이 어떠하든 국보 음향이 K팝 앨범에 들어간 것은 의미 있다. 앨범 제목부터 ARIRANG이니 한국 전통 문화 요소를 넣었다는 것만으로 대견한 면이 있다.그러면 우리 민요 아리랑은 얼마나, 어떻게 쓰였나. 앨범 지향성을 보여주는 타이틀곡은 100% 영어 가사의 ‘SWIM’. 민요 아리랑은 첫 곡 ‘Body to Body’에 잠깐 나온다. 가사의 70%가 영어인 이 곡 후반부에 1분 정도 본조(本調) 아리랑이 흐르는데, 가사나 곡 전개와 조화롭지 않아 그냥 병치나 배치에 가깝다.
아리랑 관련 정보도 세계인이 함께 볼 음원 사이트 곡 소개란에서 찾아볼 수 없다. 샘플링된 연주라면 어떤 음악가의 어느 음반·음원에서 가져온 건지, 새로 녹음한 거라면 그 연주자나 가창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아라리, 자진 아라리 등으로 전국에서 전승된 우리 아리랑은 3만 종이 넘는다는 연구 결과가 무색하다. 안 그래도 ARIRANG이 뭔지 궁금한 해외 아미는 앨범이 발표되기 전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부터 유튜브 영상에까지 몰려와 조회 수를 늘리고 외국어 댓글을 달았다.
그럼 앨범 공개 뒤 음원과 음반에 표시된 제작사 공식 자료는 이들의 갈증을 풀어줬을까. 아니다. CD와 바이닐엔 음원 사이트와 달리 일부 정보가 들어가 있긴 한데, 이렇게 쓰여 있다. ‘*Contains a sample from KBS “추석특집 민요잔치 <달아 달아 밝은 달아>” performed by 강효주, 이나현, 하지아, 신수정’.
BTS 멤버들은 미국에 건너가 약 두 달간 로스앤젤레스(LA)에 머물며 앨범 제작에 매진했다고 한다. 소속사가 제공한 곡 해설을 보면 아리랑, 성덕대왕신종의 디테일은 몰이해를 넘어 무관심에 가까워 보인다. 반면 영어 가사와 해외 참여진 설명은 정교하다. ‘앨범 화두인 아리랑으로 한, 그리움 등 다양한 정서를 담았다’는 취지를 들었지만 영어 가사가 3분의 2 이상인 앨범을 들으며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했다. BTS의 음악적 그리움의 대상은 어쩌면 힙합, R&B 본토가 아니었을까….
BTS 새 앨범에 드러난 음악적 정체성이 우리 아리랑보다 ‘LA 아리랑’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뼈아픈 지점이 있다. 컴백 직전 소속사는 1896년 미국 최초의 아리랑 음반 녹음 스토리에 멤버 7명의 캐릭터를 얹은 짧은 애니메이션을 공개했다. 의미심장해 보였다. 그런데 이것도 지금 논란이다. 한국 청년들이 미국 워싱턴DC 하워드대 교정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지켜보는 학생이 대부분 백인으로 묘사됐다는 것이다. 하워드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부터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까지 명사를 배출한 대표적 아프리카계 미국인 명문 학교다. 별칭이 ‘검은 하버드대’일 정도다. 현지 일부 누리꾼은 “BTS가 자신들의 음악이 흑인 음악인 R&B와 힙합에 뿌리를 뒀다고 말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연출은 흑인 미국인에게 더욱 공감을 얻지 못했다”고 말했다.
요즘 ‘뮷즈(뮤지엄 굿즈)가 잘 팔린다’고 좋아만 할 게 아니다. 한국 전통 문화든 다른 나라의 문화적 맥락이든 그것이 소품, 단순 배경, 힙합, 프로레슬링의 기믹(gimmick·관심을 끌기 위한 속임수 설정)처럼 이용되고 마는 이야기는 씁쓸하다. 더욱이 국위 선양 아이콘인 BTS 이미지에 이런 그늘이 드리우면 곤란하다. 끝내주는 힙합, R&B, 얼터너티브 팝 앨범으로 돌아온 일곱 명의 청년에게 오점이 남으면 억울하지 않은가. 그게 ‘콘셉트 놀음’이란 혐의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바깥으로 떨쳐 나가기 전에 안부터 다져야 한다. 문화는 숫자로만 기록되는 게 아니다.
임희윤 음악평론가·아르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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