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립 50여년차인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 A사는 최근 첫 기업가치제고 공시를 발표했다. 지난해 배당액을 늘리면서 조세특례제한법상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고배당 기업에 해당돼서다. 고배당 기업이 기업가치제고 공시를 올리면 분리과세에 따른 절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저(低)PBR(주가순자산비율) 기업명단 공개’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A사의 PBR은 0.24배에 그친다.
하지만 A사가 기입한 가치제고 목표는 단 두 줄. 그마저도 ‘수익성 중심의 경영체계 강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한 주주가치제고 확대’와 같은 원론적인 문구였다. 향후 기업가치를 띄울 계획도 ‘원가 경쟁력 강화 및 생산 효율성 개선’ 등 구체성이 떨어지는 내용뿐이었다. 밸류업 공시가 올라온 이후 A사의 주가는 오히려 3% 이상 하락했다.
31일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올라온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는 474건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35건)은 물론, 작년 한 해 동안 올라온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141건)를 크게 뛰어넘었다. 2년 전(98건)과 비교하면 5배 가까이로 급증했다.
기업가치제고 공시가 급증한 건 지난달부터 시행된 배당소득 분리과세 정책 효과가 크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에서 △직전 사업연도 배당성향이 40% 이상이거나 △배당성향이 25% 이상인 동시에 직전 연도 대비 배당금을 10% 이상 늘린 기업에 대해 정기주주총회 다음날까지 기업가치제고계획을 공시할 경우 분리과세 특례를 적용하기로 했다. 분리과세 시 배당소득 구간별로 세율(14~30%)을 다르게 적용하기 때문에 기존 금융소득종합과세 최고 세율(49.5%)과 비교하면 절세 혜택이 크다. 기업 경영권을 가진 최대주주에도 유리하다.
오는 7월 시행 예정인 ‘저PBR 기업 명단 공개’를 피하려는 목적도 크다. 금융당국은 업종별 PBR 하위 20% 종목을 공개하는 ‘네이밍 앤 쉐이밍’(공개해 망신주기) 방식을 도입키로 했는데, 기업가치제고계획을 발표하면 일정 기간 면제해주기로 했다. 사전에 자발적으로 밸류업 계획을 세우면 정상 참작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들이 배당을 늘린 건 고무적이지만, 설비투자, 인수합병(M&A), 자사주 매입 등 장기적인 주가 부양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면 밸류업 정책은 ‘앙꼬 없는 찐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지난달 말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 후 상장기업의 준비시간이 부족한 점을 감안해 시행 첫 해에 한해 약식공시를 허용했다”며 “내년부터 현황진단, 목표설정, 계획수립, 이행현황, 소통 등 기업가치제고계획의 모든 내용을 기재한 완결성 있는 공시를 제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저PBR 기업 명단 공개 면제에 대해서는 “PBR 개선을 위한 현황진단, 목표설정, 실행계획 등이 포함된 공시를 제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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